['재건축 투기 자금추적' 시장반응] "집값 잡는데 한계" 시큰둥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서울 강남 재건축아파트 투기 혐의자에 대한 국세청의 고강도 자금출처 조사 방침 발표에 대해 서울 강남지역 부동산 시장은 냉랭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소에는 투자자들의 걱정스런 문의 전화가 가끔 걸려올 뿐 거래 중단이나 매물 회수,급매물 출현 현상 등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동안 정부의 대책 발표 때마다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며 문을 닫아걸기 일쑤였던 중개업소들도 이번에는 정상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매물 부족과 호가 위주의 가격 형성 패턴도 여전하다.
재건축 일정이 확실한 일부 단지의 경우 가격 상승은 물론 매수 문의까지 증가해 정부의 의지를 비웃는 듯한 모습까지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 업계는 "강남권 투자자들이 정부의 이번 대책을 '양치기 소년'에 빗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올 들어 세 번이나 발표된 집값 안정 대책마다 세무조사 방침이 포함됐지만 '반짝효과'에 그쳤던 탓에 투자자들은 이번에도 다를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장은 '정중동(靜中動)'
시공사 선정 직후 급등세를 보이며 투기세력이 작전 대상으로 삼았던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나 개포주공 아파트 주변 중개업소들도 대부분 문을 열고 손님을 받고 있다.
개포주공 저층 단지의 경우 매도·매수세간 별다른 조정 없이 매물 부족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세무조사를 피하기 위해 거둬들인 것이 아니라 실제 거래가 이뤄지며 매물이 소화된 것이다.
개포주공 1단지 15평형의 경우 '8·9 집값 안정대책' 직후 3천만∼4천만원 떨어졌지만 보름이 지난 최근에는 다시 4억5천만원으로 원상 회복했다.
잠실주공도 저층 고층할 것 없이 같은 기간 3천만원 가까이 오르는 등 대부분 아파트가 강보합세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닥터 안현숙 사장은 "올 들어 비슷한 대책이 몇번씩 되풀이되다 보니 수요자들도 둔감해져 약발이 보름을 못간다"며 "여유자금으로 아파트 한두 채를 장만하겠다는 투자자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안전진단이나 조합설립 인가 등 재건축 추진일정이 확실한 아파트 쪽으로 매수세가 옮겨가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9일 집값 안정대책 발표로 된서리를 맞았던 은마아파트의 경우 보름새 3천만∼4천만원 떨어진 채 문의가 끊어졌지만 인근 청실아파트는 같은 기간 3천만원 안팎 올랐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청실아파트를 찾는 문의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통씩 걸려 온다"며 "정부와 투자자들이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규제 대상으로 지목된 아파트에서 빠져나온 투자자들이 결국 또다른 재료를 갖고 있는 주변 아파트로 옮겨갈 뿐 매수 의사 자체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역삼동 고려부동산 장진선 사장은 "강남권 수요자 중 열에 하나꼴인 투기세력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자금 추적이나 세무조사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지만 집값 안정 대책으로서의 효과는 미지수"라고 진단했다.
◆대책 없나
일선 중개업자들은 근본적인 수급 불균형 해소나 부동산 시장에 고여 있는 여유자금을 분산할 대안 상품 없이는 강남 집값을 잡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진단한다.
재건축 수요자들이 투자 잣대로 삼고 있는 강남권 아파트 분양가를 다시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건축 수요자 대부분이 새 아파트 값이나 주변 아파트 분양가를 기준으로 기대 수익률을 따져 매수 대상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잠실 로얄공인 최한규 사장은 "투기세력의 경우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기준시가 인상이나 고강도 세무조사는 약발이 서지 않는다"며 "직·간접적인 가격 규제를 통해 수요자들의 심리 속에 끼여 있는 거품부터 제거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강황식·조성근 기자 his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