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근로자와 연금생활자에 대한 일방적 임금 및 연금 삭감은 위헌이라는 아르헨티나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노동단체는 크게 반기면서도 연방정부와 마찬가지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 판결 취지로 볼 때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시행한 임금 및 연금 삭감조치를 당장 철회하고 월급 등을 소급해서 지급해야 마땅하지만 국고가 텅빈 상황에서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총리격인 알프레도 아타나소프 내각조정장관은 23일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그러나 정부가 판결을 이행할 만한 재원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은 전국민이 잘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판결의 취지나 강제성은 이해하지만 정부로서는 돈이 생길 때까지는 임금과 연금을 현행대로 지급하는 수 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정부의 이런 태도에 대해 노조와 연금생활자들은 당연히 불만이지만 시위 등 강력히 항의한다고 해서 해결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체념하는 표정이다. 이들은 다만 지난해 7월 정부가 취한 일방적인 임금 삭감조치가 위헌이라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근로자와 연금생활자들의 승리'를 뜻한다는 데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아르헨 최대 노동단체인 노조총연맹(CGT)의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사무총장은 "정부의 임금삭감은 근로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위헌 사항이었는데도 당시 델라루아 정부는 무리하게 몰아붙였다"며 "대법원 판결은 노조의 승리를 의미하는 동시에 정부의 독단에 쐐기를 박은 조치"라고 환호했다. 오라시오 멕기라 노동전문 변호사도 "지난해 7월 국제통화기금(IMF)와의 협약을 준수하기 위해 `재정적자 제로' 정책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임금과 연금을 무리하게 자른 것은 정부의 실수였다"며 "확정 판결인 만큼 정부는 일정한 시일안에 합리적인 방법으로 문제 해결수단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노조와 연금생활자들의 반응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는 없지만 정부의 사정을 뻔히 아는 만큼 지금 당장은 임금 소급지급 및 원상회복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 않다. 페르난도 델라루아 전 대통령은 경제.금융 위기가 절정에 이르던 지난해 7월 월500페소(당시 미화 500달러) 이상의 임금과 연금을 받는 공공부문 근로자와 연금생활자의 임금 등을 각각 13%씩 삭감하는 경제비상대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노조 등은 이 조치가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며 소송을 제기해 지난 22일 대법원에서 `위헌' 확정판결을 이끌어냈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성기준 특파원 bigpe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