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들이 한국에 글로벌 연구개발(R&D) 센터를 잇따라 설립하고 있다. 독일의 세계적 화학회사 머크는 TFT-LCD용 액정을 개발·생산하는 연구센터를 경기도 평택에 설립, 30일 오픈한다. 머크는 "LCD 초강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무한한 잠재성을 인정해 한국행을 결정했다"며 "연구개발 비중이 절반이나 되는 생산기지를 해외에 짓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세계 20위권 반도체 메이커인 미국 페어차일드는 패키지 분야 글로벌 R&D센터를 경기도 부천에 짓겠다고 발표했다. 완공 시점은 내년 9월. 매출 1백조원 규모의 독일 종합 기계회사 지멘스도 차세대 초음파 의료기기를 한국에서 개발해 전세계에 공급키로 했다고 밝혔다. 자동화기기.항공기엔진기업 미국 하니웰은 미국에 있던 자동화기기 분야 글로벌 R&D기능을 한국하니웰의 천안 연구소로 옮기고 있다. ◆ 한국을 선택한 배경 =이들이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중국을 코 앞에 둔 동아시아권의 핵심이면서 인프라가 만족스러울 정도로 발달했기 때문이다. 하니웰의 최기순 이사(R&D센터 설립 코디네이터)는 "미국 유럽에 있던 R&D 기능을 성장 시장인 아시아로 옮기는 다국적 기업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일본은 기술이 있지만 유지비용이 비싼데다 정체 시장이고 중국은 넓지만 인프라와 인력 수준이 낮아 한국이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력이 우수하고 IT 인프라가 발달했다는게 매력이라는 얘기다. 특히 일부 산업에선 한국 기업이 세계적인 기술과 구매력을 갖고 있다는 것도 한국 이전의 이유가 되고 있다. TFT-LCD가 그런 경우. 머크의 경우 TFT-LCD용 액정 생산량의 60%를 한국의 삼성전자 LG필립스LCD 하이디스가 사가고 있다. TFT-LCD용 필름을 생산하는 한국쓰리엠이 이 회사의 전세계 유일한 디스플레이 분야 R&D센터를 한국에 지은 것도 같은 이유다. ◆ 의의와 한계 =다국적 기업의 R&D센터 유치는 국내 기술력이 세계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는 기회다. 한국하니웰은 내년까지 2백여명의 연구원을 뽑고 이들을 전원 미국과 영국 연구소에 보내 3∼6개월간 연수받게 하면서 기술 교류를 시킬 계획이다. 지멘스는 한국이 걸음마 단계인 초음파 관련 기초 연구를 서강대와 공동 진행키로 해 학계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머크 지멘스 하니웰은 개발뿐 아니라 생산도 여기서 할 예정이어서 고용과 수출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R&D센터의 입지로 종합점수 1위를 받았다고 해서 자만할 정도는 아니다. 특히 언어가 큰 장벽이 되고 있다. 하니웰 최 이사는 "의사소통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전세계의 요구를 접수해 제품을 개발하려면 기본적인 언어 소통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니웰 미국 본사는 언어가 가능한 경력자 채용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영어 실력을 갖춘 경력자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최 이사는 "영어가 뒷받침된 경력자로 국한시켰던 채용 기준을 영어를 잘 하는 대졸자까지로 넓히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 다국적 기업 관계자는 "한국이 다국적 기업의 R&D 기지로 자리 잡으려면 무엇보다 탄탄한 영어 실력을 갖춘 인재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택.정지영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