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의 청계고가도로를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나란히 서 있는 삼일아파트. 곳곳이 낡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양새다. 칙칙한 회색깔의 외벽에는 가스관과 보일러관이 얽혀 있다. 청계고가 위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말 그대로 '흉물'이었다. 한 주민은 "관리가 제대로 안돼 내부에서 퀴퀴한 냄새가 진동한다"며 "사람 살 데가 아니다"라고 불평했다. 서울시 현안으로 떠오른 삼일아파트 정비사업. 철거는 시급한데도 이런 저런 이유로 진척이 더디다. 마냥 방치해서는 안되는 상황이다. 붕괴위험에 주민들은 잠도 제대로 못잔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제1공약'으로 내건 청계천 복원사업과는 직.간접으로 관련돼 있다. 삼일아파트는 지난 69년 청계천을 복개하면서 건설됐다. 7층 높이로 종로구 창신동과 숭인동에 각각 6개동, 중구 황학동에 12개동이 들어설 때만 해도 '첨단' 소리까지 들었다. 지금은 철거대상으로 전락한 신세다. 지난 96년 안전검사 때 재난위험시설(D급)이라는 낙인까지 찍혔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철거공사가 끝난 곳은 황학동 1개동뿐이다. 문제는 삼일아파트의 흉물화가 당분간 불가피할 것이라는 점이다. 서울시는 현재 남아있는 시민아파트중 최대규모인 삼일아파트를 2004년 말까지 정비하겠다고 밝혔지만 예정대로 진행될지는 불투명하다. 건물은 주민 소유, 부지는 서울시 것이어서 재개발 방식과 보상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주민, 주민과 주민 간 이해관계가 무척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에도 철거일정은 수차례 연기됐었다. 서울시는 숭인동 삼일아파트를 '보상 후 철거'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보상비가 턱없이 낮다며 '시유지 매입 후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주민들은 17층짜리 주상복합건물 2개동을 짓겠다며 시공사를 선정하고 최근 1천4백50여평의 시유지를 싸게 넘겨 달라고 시에 요청했다. 시 관계자는 그러나 "청계천 복원 사업이 시작되면 청계천 주변의 토지가 꼭 필요하다"며 반대했다. 시는 대신 주민들에게 '건물 매각 동의서'를 제출토록 요구하고 있다. 건물주 90% 이상이 동의서를 내면 택지개발아파트 입주권과 보상비를 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입주 때부터 살고 있다는 주민 이부자씨(64.여)는 "아파트 매매가격이 1억원 이상인데 보상비는 2천5백만원 정도"라며 "게다가 당장 돈이 없는데 입주권이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창신동 쪽은 사정이 훨씬 복잡하다. 지난 84년 재개발구역으로 함께 묶인 뒤편 주택가 주민들이 재개발에 반대해 18년째 사업은 요지부동이다. 주민들은 이에 따라 최근 '분리 재개발'을 추진 중이지만 서울시는 체계적 도시개발에 어긋난다며 부정적인 입장이다. 황학동 삼일아파트는 세입자 이주 문제가 걸림돌이다. 건물주들로 구성된 재개발조합이 아파트를 헐고 그 자리에 30∼35층짜리 주상복합건물 8개동을 짓기로 하자 자격 미달로 임대아파트나 주거대책비를 받지 못하는 1백여가구의 세입자들이 "여기서 나가면 갈 곳이 없다"며 버티고 있는 것. 전복열 할머니(77)는 "보증금 1백만원에 월세 30만원을 내는데 지금은 보증금도 다 까먹었다"며 "서울시와 정부가 살 곳을 마련해 달라"고 하소연했다. 서울시와 중구청은 그러나 "자격이 안되는데 어떻게 임대아파트를 줄 수 있느냐"며 "현실적으로 재개발조합이 이주비를 좀 더 얹어줘 내보낼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