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개 국내기업이 세계시장을 주름잡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D램메모리반도체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 부호분할다중접속방식(CDMA) 이동통신 조선 등의 업종은 국내 업계 순위가 곧 세계 순위나 다름없다. 가전과 자동차 등도 세계시장 경쟁의 축소판이랄 수 있는 경쟁이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다. 같은 땅에서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다 보니 국내 기업들은 어느새 세계적인 기업으로 훌쩍 커버린 것이다. 세계시장을 국내기업들이 휩쓸고 있는 대표적인 업종은 조선. 현대중공업(1위), 대우조선해양(2위), 삼성중공업(3위) 등 세 회사의 국내 순위가 곧 세계 순위다. 특히 지난해 전세계 시장에서 발주된 고부가가치 LNG선 29척중 21척을 국내 조선3사가 수주했다. 세계조선시장은 국내기업들의 독무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최근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TFT-LCD도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가 세계시장 1,2위로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시장점유율은 삼성전자가 20.2%(10.4인치 이상 기준), LG필립스LCD 17.1%로 대만과 일본 업체들을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았다. LG는 삼성전자를 제치기 위해 지난 5월 세계에서 가장 먼저 5세대 라인을 가동했다. 삼성전자도 이에 질세라 내달중 5세대 라인의 가동에 들어간다. 국내 수출주력산업인 D램 메모리에서는 10년째 부동의 1위인 삼성전자와, 2위(2000년)에선 밀려났지만 아직도 3위를 유지하고 있는 하이닉스가 세계시장을 떠받치고 있다. 두 회사가 40%이상 시장을 차지, 한국에 반도체 강국이라는 타이틀을 안겨줬다. 최근 수출주력상품으로 급부상한 휴대폰에서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4위에서 올해 세계 3위에 올랐으며 LG전자도 지난해 10위에서 6~8위로 껑충 뛰었다. 특히 한국이 원조나 다름없는 CDMA 휴대폰에서는 삼성과 LG의 시장점유율이 각각 26%와 19%로 1,2위를 차지했다. 세계적인 국내업체들의 경쟁이 지나치다는 소리를 들을 때도 적지 않다.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는 경쟁사를 견제하기 위해 각각 17인치와 18.1인치를 LCD모니터 표준으로 내세웠다. 또 5세대 설비 표준도 한때 서로 다르게 정했었다. LNG선 분야에서 현대중공업은 지난해까지 둥근 공 형태의 '모스형' 건조를 고집했고 대우와 삼성은 밋밋한 칸막이형의 '멤브레인형'으로 맞서며 자존심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고객을 빼앗기 위해 저가판매경쟁을 벌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설비투자와 해외기업인수를 놓고 과열경쟁을 벌여 결국 위기의 한 요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경쟁이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외국기업들은 한 울타리 안에 세계적인 경쟁업체를 갖고 있는 한국을 부러워한다. "미국 아이다호에 있는 마이크론은 미국의 유일한 D램 업체일 뿐 아니라 그 지역에서도 거의 유일한 첨단업체여서 정치적인 영향력이 대단하다. 그러나 우수 인재들이 마이크론 한 회사만을 보고 외딴 아이다호로 오려고 하지 않아 연구개발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이크론이 하이닉스반도체 인수에 나섰던 중요한 이유중 하나도 한국의 반도체 첨단인력을 활용하려는 의도였다. 그렇게 보면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를 수 년 전에는 3개, 지금은 2개 갖고 있는 한국은 반도체산업에서 커다란 강점을 갖고 있는 것이다"(박종섭 전 하이닉스반도체 사장) LG필립스LCD의 윤석환 홍보팀 과장은 "삼성전자와 신경전을 벌일 때도 많지만 이같은 경쟁이 결국 서로의 경쟁력을 키워온 요인"이라며 "항상 우리 회사 뿐아니라 한국 LCD산업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김성택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