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RI는 정부 출연연구소 가운데 대표적인 성공모델로 꼽힌다. 우수한 인재들이 한 데 모여 수많은 첨단기술을 내놨다. 한국을 정보통신 강국으로 만드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투자 효율이란 면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다른 연구소들과는 판이하다. ETRI의 성공요인은 무엇일까. ◆ 상용화 기술 전략 적중 =ETRI가 출범한 70년대 후반 국내 기술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보잘 것 없었다. 특히 원천기술의 경우 그 수준이 형편 없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상용화 기술에 승부를 걸었다. "원천기술은 못 갖더라도 해외에서 원천기술을 도입해 가장 먼저 상용화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이같은 전략이 세계 최초의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상용화, 반도체 강국의 신화를 일궈냈다. ◆ 목숨 걸고 시작한 TDX 개발 =국산전자교환기는 ETRI의 대표적 기술개발 성공사례다. 이 사업은 지난 76년 2백40억원의 연구개발비가 투입된 대형 국책과제였다. 실패하면 앞으로 다른 국책사업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게 뻔했다. 연구원들은 사업을 시작하면서 "신명을 바쳐 최선을 다할 것이며 실패하면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내용의 각서에 서명했다. 이같은 비장한 각오가 백지상태에서 세계 최첨단 전자교환기 개발을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이 됐다. ◆ 발상 전환으로 세계정상 정복 =후발국인 한국의 반도체기술 수준이 미국과 일본을 1∼2년 격차로 따라잡기 시작한 지난 88년 ETRI 이효진 박사(현 벤처기업 RF세미 대표)는 반도체 세계 1위 정복을 위해 집념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91년 4월, 이 박사는 세계 최초로 수직구조를 갖는 새로운 개념의 반도체 셀(Cell)구조를 개발했다. 기존 반도체는 셀을 평면에 나란히 배열했는데 이 박사는 이를 수직구조로 재배치해 셀 면적을 3분의 1로 줄이고 동작속도는 3배 빨라진 획기적인 원천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 최고 수준의 연구원 집단 =ETRI에는 1천명 이상의 핵심연구 인력이 모여있다. 국내 출연연구소 및 민간 연구소를 통틀어 최대 규모다. 이들은 석.박사들로 대부분이 대형 연구개발사업을 수행해본 경험을 갖고 있다. "연구원 개개인을 세계 어디에 내놔도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는게 안팎의 평가다. ETRI 연구원들이 만드는 영문 학술지 'ETRI 저널'이 국내 전자.정보통신 분야 학술지로는 유일하게 세계적인 과학기술논문 색인지 SCI에 등록된 것도 연구원들의 경쟁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