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20:15
수정2006.04.02 20:16
'로드 투 퍼디션'(Road to Perdition)은 헐리우드 갱스터무비의 전통을 잇는 수작이
다.
갱 영화의 고전 '대부'가 마피아 파벌간 대립과 질곡의 가족사를 담았다면 이 작품은 아일랜드계 마피아 내부의 갈등과 부자(父子)관계를 집중 조명한다.
존경과 혐오의 대상으로서의 아버지, 희망과 업보로서의 아들이란 이중적 관계가 처절한 살육전을 통해 치밀하게 육화된다.
생생한 액션과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은 이 작품을 '대부'처럼 품격 높은 갱 영화로 끌어올리고 있다.
'아메리칸뷰티'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샘 멘더스 감독이 연출을 맡고 '필라델피아' '포레스트검프'로 두 차례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톰 행크스, '컬러오브머니'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폴 뉴먼 등이 출연했다.
'로드 투 퍼디션'을 직역하면 '파멸의 길'이다.
퍼디션은 쫓기는 주인공이 찾아가는 지명이자 '정신적 파멸'을 뜻하는 보통명사.
살인을 업으로 삼는 조직폭력배들이 가야 할 길을 상징한다.
영화의 시공간은 음울하고 세찬 겨울에서 밝고 따스한 봄으로 진행한다.
도입부는 겨울의 장례식이지만 결말부는 파릇파릇한 풀이 가득한 농촌이다.
흥겨운 결혼식으로부터 어두운 암흑세계로 점차 이동하는 '대부'와는 역순이다.
'대부'에선 순수한 청년이 선친의 후계자로 암흑가 보스가 된다.
이 영화에선 악업을 아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고자 목숨을 던진 마이클 설리반(톰 행크스)의 아들 마이클 주니어가 범죄세계로부터 서서히 빠져 나와 농촌에서 보통사람으로 살아간다.
영화는 마이클 주니어의 관찰자 시점에서 회상방식으로 전개된다.
마이클 주니어는 아버지의 직업을 알고 싶어 미행했다가 아버지의 살인 광경을 목격한다.
순간 어린 아들에게 아버지는 존경의 대상에서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목격자를 처단하려는 조직원들의 추적을 피해 마이클 주니어는 아버지 설리반과 함께 도피행각에 나선다.
이 '피의 여정'에서 부자는 서로를 알게 된다.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설리반에게 아들은 희망이었다.
그는 양아버지이자 두목인 존 루니(폴 뉴먼) 부자와 자신의 목숨을 바꿈으로써 아들의 신변을 지켜준다.
반면 범죄를 대물림한 루니 부자는 한꺼번에 몰락한다.
루니는 카리스마로 조직을 다스리지만 '애물단지' 아들 코너(다니엘 크레이그)에게는 속수무책이다.
"아들은 아비가 영원히 져야 할 십자가"라는 루니의 대사는 부도덕한 아버지가 자식을 다스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증언한다.
건강한 미국인의 상징으로 각인됐던 톰 행크스는 '어둠의 자식'으로 변신했다.
도입부에서 아들은 조심스럽게 "식사를 준비했습니다"고 말하지만 그는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느릿한 동작으로 옷을 갈아 입으며 짧고 나지막히 응답한다.
이 장면은 그가 절도 있고 과묵하며 애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타입임을 짐작케 한다.
동시에 부자간의 오해를 암시한다.
꼭 다문 입술과 미간의 깊은 주름은 삶의 고단함과 자기행위에 대한 죄의식을 무언으로 전달한다.
절제된 연기와 과장되지 않은 연출은 관객들이 인생을 반추하도록 여유를 준다.
사실적인 세트와 의상은 1930년대 대공황기의 미국사회를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다.
9월1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