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 판치는 증시] (中) '먹이감' 전락한 코스닥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지난 5월 코스닥기업인 모 바이오업체 K사장은 '뒷거래' 제의를 받았다.
주가를 띄워줄테니 보유 지분(60%)을 팔지 말아달라는 내용이었다.
"호재가 될만한 자료 1,2건 정도 발표해주면 된다"는 요구도 잊지 않았다.
그는 물론 단호히 사절했다.
이 회사뿐만 아니다.
역시 코스닥에 등록돼 있는 금속업체 L사장은 "지난해 이후 최근까지 '꾼(작전세력)'들로부터 4,5차례 작전 제안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코스닥시장에 이른바 작전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건당 작전 규모는 작아졌지만 케이스는 종전보다 많아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 금융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99년 31건에 불과하던 작전 건수가 2000년엔 61건,그리고 지난해엔 1백52건으로 증가했다.
코스닥시장은 이들의 집중 타깃이 되고 있다.
시가총액이 2백억원 이하인 기업이 전체의 52%를 차지하는 시장 특성상 20억~30억원만 있으면 작전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금융감독원이 주가조작혐의로 검찰에 통보한 솔빛텔레콤이나 계좌도용사건의 대상이 된 델타정보통신의 시가총액은 1백억∼1백50억원대에 불과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세분화된 작전세력=지난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작전세력엔 계보가 존재했었다.
D상고파,B공인회계사파,Y대 상대파 등이 그들이었다.
당시 덩치가 큰 거래소를 대상으로 작전을 하다보니 큰 자금이 필요했고 그만큼 작전꾼의 규모도 커야 성공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같은 계보는 거의 사라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억~30억원이면 작전이 가능한 코스닥시장이 등장하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연합전선을 구축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소규모 작전 그룹이 많아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최근 검찰에 고발된 솔빛텔레콤 모디아의 경우처럼 '투자컨설팅'이란 명칭을 붙인 사설 투자자문사 등이 사채업자(전주) 등으로부터 자금을 끌어들여 독자적인 작전에 들어가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작전 왜 끊이지 않나=증시주변에 만연돼 있는 한탕주의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솔빛텔레콤의 경우 작전 가담자들이 챙긴 부당이득만 3백25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금감원 조사결과 드러났다.
'한번만 잘하면 된다'는 인식이 작전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다.
특히 작전을 하다가 적발되더라도 대부분 벌금형으로 끝나는 가벼운 제재조치도 국내증시에서 작전세력을 키우는 원인 중 하나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고도화되는 작전기법=작전 기간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가까이 걸린다는 게 통설이다.
처음 1∼2개월은 주요주주 주식소유현황,대주주 위장소유주식,핵심 개인주주의 거래 증권사 등을 파악하는 기간이다.
이어 대주주 동의를 얻어 본격적인 주식 매집에 들어간다.
주가가 크게 오르내리는 속칭 '흔들기'를 통해 개인 물량을 저가에 모두 걷어낸 다음 회사의 호재성 발표를 앞세워 주가 띄우기에 들어간다.
이같은 작전 흐름은 거의 비슷하게 진행된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작전세력이 대주주를 갈아치우는 등 보다 과감해지는 양상이다.
코스닥위원회 관계자는 "델타정보통신 이외에도 최대주주가 바뀌면서 주가가 크게 오른 종목 10여개가 비슷한 절차를 밟은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금감위 관계자는 "사채업자를 대상으로 유상증자를 하거나 CB(전환사채) 및 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해 작전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위험 커지는 개인투자자=대형 작전엔 대부분 '작전물량'을 받아주는 기관이 끼어들게 마련이었다.
작전세력이 주가를 끌어올린 물량을 매수해주는 곳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펀드매니저들이 몸을 사리기 시작한 데다 작전 규모도 작아져 작전물량 소화처를 구하기 어려워졌다.
델타정보통신의 계좌도용 사건도 확보물량이 예상 외로 커진 상황에서 물량을 받아줄 세력을 찾지 못한 작전세력이 물량을 털어내려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으로 경찰수사 결과 밝혀졌다.
작전 물량소화처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피해는 개인투자자에게 돌아갈 공산이 더욱 커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철수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