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회사 사장을 하다 자기사업을 하는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달러 차입금을 지금 갚아야 하오?"하고 물었다. 대답은 간단하다. "자유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한다는 것은 환율이 오를 확률과 내릴 확률이 50%씩이니 알 수 없죠.그래서 외화리스크에 대한 헤징이 필요합니다.그러나 개인적 생각으로는 원화가 평가절상될 것 같습니다.당장 외화차입금을 상환하기 보다 기다려 보는 게 어떨는지요." 3개월 전 칼럼엔 '일본 엔화가 평가절상될 것'이라고 돼 있다. 아직까지는 맞는 것 같아 필자 의견을 물어 본 것 같았다. 1995년 이후 미 달러화 가치가 주요 교역대상국 통화(실질실효 환율기준)에 비해 40%나 올라 있어서 1985년 플라자회담 이전 상태와 같고,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계속되고 있다. 또 미국 경제에 대한 투자가들의 신뢰는 떨어져 있어 해외자본순유입이 감소되고 있고,일본 경제가 위태롭지만 달러화가 유로화나 엔화에 비해서 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들어 원화는 미 달러화보다 일본 엔화에 연동돼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엔화가 강세가 되면 원화의 값어치도 미 달러에 비해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한국 경제 여건이 일본보다 견실하므로 원·달러 환율이 엔화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강세를 나타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현재 1달러당 1천2백원 수준에서 더 평가절상(환율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원화 값어치는 외환시장에서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자본자유화가 진전돼 외환당국의 개입으로 조정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원화 값어치가 떨어지면 1천1백5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가 외환시장에서 무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올라갈 때(환율 하락)는 정책수단이 제한된다. 외평채를 발행해 조성된 자금으로 달러화를 매입해서 달러화 상승을 부추길 수 있겠지만,그 효과는 역외금융시장(NDF)의 발달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원화의 값어치는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이 어떻게 되느냐에 달려 있다. OECD국가 최고수준인 6%대의 경제성장,성공적인 금융개혁과 투명성 제고는 국내정치 불안을 불식시킬 정도로 견실하다고 본다. 경상수지 흑자기조도 올해까지는 계속될 것 같다. 미국 증권시장의 붕괴로 포트폴리오 재구성이 있긴 하겠지만,한국에 대한 순자본 유입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원화가 미 달러화에 비해 평가절상될 것이라는 예상에는 무리가 없는 것 같다. 원화의 평가절상은 한국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낮출 것이다. 특히 중국 위안화나 홍콩 달러화는 미 달러화에 연동되고 있으므로 가격경쟁력은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원화 평가절상이 피할 수 없는 추세라면,언제나 제기되고 있는 과제이긴 하지만,한국 상품의 생산성 향상과 질적 경쟁력,브랜드 경쟁력 향상을 위한 대책강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원화의 평가절상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원고(高) 현상은 국내기업의 해외진출과 국내 주식시장에는 혜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기 일본기업의 해외진출 러시에서 보았듯이 국내통화의 평가절상은 국내기업의 해외진출을 촉진시킬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타당성 없었던 프로젝트가 투자액수의 감소로 수익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현대자동차의 미국과 중국 진출이 손쉬워질 수 있게 돼 국내 코스트 상승과 해외시장 장벽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될 수 있다. 국내 자본시장에서도 환율변동에 따른 외환차익을 기대할 수 있으므로 외국인투자가 증가될 것이다. 외국인투자 증가는 국내기업의 자본조달비용을 낮추고,부채비율도 낮추게 만들어 기업재무구조를 강화시킬 수 있다. 주가상승으로 인해 국내투자가에게도 자본이득을 실현시켜 국내 소비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조작되지 않은 원화의 평가절상은 바람직한 것이다. 한국경제가 건전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수출상품 가격경쟁력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절상의 장점도 많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원화의 평가절상 추세는 1997년 환란 이전 원화의 고평가와는 다르다. 환율절상을 즐기면서 준비하면 될 것 같다. ydeuh@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