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서리는 위헌인가 아닌가. 청와대와 한나라당 그 어느 쪽 주장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기 전에, 그 지루한 논란은 서글프기만 하다. 총리서리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과거에서 배우는 것이 없는지,얼마나 상상력이 부족하고 단견인지,시스템적 대응능력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권의 첫 장관들은 대통령 취임후 1주일이 지난 98년 3월3일 임명됐다. 그것도 김영삼 정권 마지막 총리였던 고건씨의 제청이라는 '변칙'을 거쳐서다. 사사오입으로 헌법도 고친 이 땅의 '현학적'인 법해석에 따른다면 다른 결론도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국무총리 장관 차관 등 정무직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남과 동시에 자동으로 해임된다고 보는 것이 건전한 상식이다. 일본의 경우 총선실시를 위한 내각총사퇴때 일부 각료가 개인적 정치소신에 따라 사표제출을 거부한 적이 있었는데,장관 및 정무차관은 별도의 해임절차가 없더라도 총리사임과 동시에 자동해임된다는 유권해석이 내려졌었다. 내각책임제와 대통령제라는 차이가 있지만 정권교체 시점의 정무직 신분에 대한 해석은 달라져야 할 이유가 없다. 대통령 취임후 1주일 동안 전정권 장관들이 계속 집무한 것이나 전정권 총리가 새 정권의 장관을 제청하고 곧바로 사임하는 형태로 새 정권 내각을 구성한 것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변칙이다. 되풀이해서 좋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내년 2월 새 정권이 들어설 경우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총리서리가 위헌이라면 그렇다. 대통령 취임후 총리후보자를 지명,인사청문회를 거쳐 총리임명동의를 받은 뒤 그 총리의 제청에 따라 각부 장관을 임명한다면 1개월 가까운 국정공백은 어떻게 할 것인가. 대통령 취임전에 국무총리 후보자를 지명,인사청문회를 가진다면 그것이야말로 대통령이 아닌 사람(당선자)이 국회에 총리인준절차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명백한 위헌일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총리서리 위헌논란이 어제오늘 나온 게 아니고 인사청문회제도로 문제가 더욱 복잡하게 얽혀진 국면이지만 제도적으로 이를 해소하려는 노력은 전무하다. 국가권력구조의 핵심적인 사안에 대한 대처가 이런 정도이니 다른 것들은 오죽할까. 진정한 의미에서의 시스템적 대응이 불모지대나 다름없는 게 우리 사회가 아닌지…. 경제쪽은 특히 그런 느낌이 두드러진다. 어떤 것은 이미 드러난 시스템의 오류를 애써 외면하기 때문에,또 어떤 분야에서는 방향의 일관성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바뀌기 때문에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결여돼있는 게 현실이다. 말썽 많은 부동산투기도 따지고보면 그런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미분양 아파트를 사면 양도세를 면제해준다,분양권 전매(轉賣)를 허용한다는 등등의 부동산경기 활성화정책이 투기를 촉발시켰다고 보는게 옳다. 1가구 1주택 양도세면제요건이 그동안 몇차례나 바뀌었는지 생각해볼 점이 있다. 부동산투기라는 최악의 실패를 몇차례나 되풀이했는데도 그 원인행위 역시 계속 되풀이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쳇바퀴 도는 개미와 다를 것이 없다. 우리은행 등이 하이브리드상품이란 이상한 이름으로 영구사채를 발행하겠다고 나서는 것 또한 따지고보면 비슷한 점이 있다. 정부은행으로 증자는 불가능한데 어떻게든 자본을 늘려야 할 형편이기 때문에 그런 궁리를 해낸 모양이지만 그것은 결코 묘수일 수 없다. 팔고 살 유통시장도 없는 여건 아래서 이자만 주고 원금은 영원히 상환하지 않을 채권을 발행하겠다는 것은 액면가를 밑도는 주가 아래서 액면가증자를 한 과거의 은행증자와 마찬가지로 비리적 성격이 다분하다. 대출거래선과 '딜'을 하느냐,연기금을 대상으로 압력을 행사하느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긴 안목에서 은행들이 계속적인 증자를 해나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게 당연하고 그러려면 지배주주가 나올 수 있게 은행을 민영화하려는 제도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게 순리일 것 또한 자명하다. 편법이나 강변으로 우선 궁한데서나 벗어나자는 하루살이 발상,바로 그런 행정편의주의로는 절대로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안목의 시스템적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