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루사가 남긴 상처가 깊다. 수많은 집과 가을걷이를 앞둔 들이 거친 물살에 휩쓸리고,사람들의 몸도 많이 상했다. 40년만의 기록적인 물난리라고 한다. 여름나기가 정말 힘 겹다. 태풍이 비껴 간 도심의 하늘 가득하게 가을을 부르는 매미소리 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태풍으로 인한 상처가 아무리 심해도 스스로 일어서야 할 터이다. 이보다 더한 일을 당해도 언제 그랬냐는 듯 툭툭 털고 내일을 맞았던 우리이지 않은가. 어려운 때일수록 더 환해 서로에게 의지가 되었던 우리네 넉넉한 미소. 그 넓고 깊은 미소의 원형에서 역경을 헤쳐갈 위안과 용기를 확인하는 길. 서산.태안으로의 짧은 나들이를 나선다. 서해안고속도로 해미나들목에서 지척인 서산의 해미읍성에 들린다. 조선 성종 때인 1491년 완성된 석성이다. 고창읍성,낙안읍성 등과 함께 예전 마을성의 모습을 찾아볼수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 충청지역 군사령부로 충무공이 근무하기도 했던 이곳은 초창기 천주교도들의 한이 서려 있다. 19세기 초 어둑하던 시절 수많은 천주교도들이 사람을 홀리게 하여 속였다는 죄목으로 이 자리에서 처형당했다고 한다. 고문을 못이기겠다는 듯 몸을 비꼰 채 성내에 홀로 서 있는 회화나무(호야나무)가 당시의 아픔을 증언한다. 여러명을 한꺼번에 생매장시켰다는 해미천변의 여숫골 앞에서는 마음이 더욱 숙연해진다. 647번지방도를 따라 올라가다 가야산자락 상왕산 중턱에 자리한 개심사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개심사는 백제 의자왕때 만들어진 아담한 절집. 개심사에 이르는 길가 목장의 "바쁠것 없다"는 풍광이 퍽이나 이국적이다. 들머리에서 이어지는 돌계단길도 차분하다. 롤러코스터를 한바퀴 타고 제자리로 들어설 때,귀가 먹먹해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느낌과 비교할수 있을까. 하늘을 뒤덮은 소나무는 찾아온 이들의 발걸음을 배려한 듯 평온한 그늘막을 내주고 있다. 아무렇게나 자란 나무를 손대지 않은 채 써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살린 당우들이 살갑다. 좁고 낮은 해탈문으로 들어선 경내는 조금 답답한 인상이지만,이내 이름 그대로 마음을 열고 묵은 때를 깨끗이 씻어주는 것 같은 묘한 매력이 있다. 다시 647번,618번지방도를 타고 용현계곡으로 향한다. "백제의 미소" 서산마애삼존불을 마주하는 길이다. 수의 신화,규모의 신화에 매몰된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보잘것 없지만,한결같이 모난데 없는 미소를 유지하는 게 반만년 이어져 온 우리네 심성을 확인하는 것 같다. 부드러우면서도 흐트러짐이 없이 어떠한 일도 넉넉히 품어 이겨온 모습이다. 서산마애삼존불 인근에 보원사지가 있다. 고려 광종때의 국사인 탄문스님의 자취로 유명한 절터다. 탄문스님의 부도,탑비,석조와 당간지주,5층석탑 등 보물로 지정된 많은 유물들이 당시의 사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2번국도를 타고 서산을 지나 태안의 백화산 중턱 태을암을 찾는다. 자동차길이 잘 닦여 있다. 태을암에는 자연암벽에 새겨 놓은 마애삼존불이 있다. 서산마애삼존불과 유사한데 여래입상 가운데 낮은 키의 보살입상을 새겨놓은게 좀 다르다. 넉넉하고 여유로운 맛은 좀 떨어지지만 오늘 우리가 머금어야 할 미소를 찾을수 있다. 나들이의 끝은 학암포로 정한다. 학암포는 태안의 작은 포구. 옛날에는 중국과의 질그릇 수출무역항이어서 분점포라 했는데,해변의 바위생김새가 학 처럼 보인다고 해서 새로 이름붙여졌다. 태안의 수많은 해변중에서도 낙조가 좋기로 손꼽힌다. 물이 빠지면 걸어들어갈수 있는 소분점도를 배경으로 떨어지는 붉은 해와 하늘색이 특히 예쁘다. 그곳에서는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고,좀 더 멀리 이웃의 아픔을 생각하는 마음이 한결 짙어진다. 태안=글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