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술(酒)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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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는 술을 마시되 덕이 없으면 난(亂)하고,주흥을 즐기되 예를 지키지 않으면 잡(雜)되기 쉬워 술을 마실 때에는 덕과 예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술에 취해 난잡해지는 주사(酒邪)를 경계한 것이리라.
이는 마치 요즘 세태를 두고 하는 말 같기도 하다.
술은 사양하지 않아야 하고 취하면 호기를 부려야 자기존재를 과시할 수 있다는 풍조 탓에 술좌석은 어지럽게 끝나는 게 보통이다.
술좌석에 끼어야 사회생활이 원만할 뿐더러 주량이 커야 통 큰 장부로 통한다는 인식이 비뚤어진 음주문화를 형성한 것이다.
게다가 술자리를 끝까지 지키며 권커니 잡거니 해야 '우리'가 될 수 있다는 동료의식도 음주문화를 저급하게 하는 한 요인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해마다 신입생이나 신입사원들이 몇명씩 희생당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음주분위기 때문일 게다.
우리의 전통적인 음주문화는 고상했다.
술은 서정적 풍류생활의 동반자였고 현세의 욕망과 집착을 넘어 자유로운 세계와 닿는 매개체였다.
그래서 여러 시인 묵객들은 취흥이 돋우면 시흥(詩興)을 발동해 가슴에 와 닿는 수많은 작품들을 남길 수 있었다.
조선시대 정철의 장진주사(將進酒辭)나 김천택의 시조 등이 그렇고 이경윤의 수하취면도(樹下醉眠圖) 역시 역작으로 꼽힌다.
성격은 좀 다르지만 현대문학사에도 술과 뗄 수 없는 시인들이 많은데 변영로 김관식 천상병 등이 대표적이라 할만하다.
얼마전 '술꾼 시인이 없다'고 일갈한 고은씨도 이 반열에 든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술에 대해 올바른 가치관을 학문적으로 정립하려는 시도가 눈길을 끈다.
연세대는 1학년의 교양과목으로 이번 학기에 '술강좌'를 개설했다.
세미나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강좌에서는 술의 기원과 종류,술이 인체와 사회생활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한국의 음주문화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발표하게 된다.
인류역사와 함께 해온 술은 결코 터부시할 대상은 아니다.
술을 제대로 알고 즐길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한 생활의 윤활유가 있을까 싶다.
차제에 선인들의 격조 높은 음주문화를 한번쯤 생각해 봄직하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