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노을 앞에 멈춰서다 .. 신현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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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rina@daum.net
마침 내가 탄 자동차가 한강을 지날 때였다.
바람따라 흔들리는 한강 위에 저녁 노을이 내리고 있었다.
도시에서 보기 드물게 접하는 이 아름다운 풍경.
나는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아 함께 탄 후배들에게 멈춰서자고 했다.
그러나 급히 작업실로 가야 한다고 재촉하는 후배.
나는 다음 말을 건넸다.
"인생은 가끔 샛길로 빠지는 재미도 있는 거야."
"맞아요.저 풍경도 지금 아니면 보기 힘들겠죠."
다른 한 친구가 내 말에 이렇게 응수했다.
바쁜 친구는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천천히 한강변 샛길로 운전대 방향을 바꿔갔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과 지는 해 언저리로 붉게 하늘이 타고 있었다.
두서없이 얄팍하게 흘러가는 하루를 일몰의 풍광은 생명력 넘치는 깊이로 바꾸어 갔다.
노을을 볼 수 있는 날도 그리 많지 않다.
해지는 시간은 불과 20분 정도.
그나마 이런 시간이 있어 감동하고 전율할 수 있는 감성을 되찾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덧없는 순간이지만 황홀한 저녁놀에 취해 걷는 우리들.
언제까지고 아쉬워 눈을 못 떼고 해가 완전히 꺼져들 때까지 함께 바라보았다.
맑지 않더라도 굽이치는 강물과 지는 해는 기쁨과 슬픔 속으로 몰아넣었다.
내 몸을 감도는 차가운 기운에 혼자라면 참 쓸쓸할텐데,옆에 지인들이 있어 따뜻한 거구나 싶어 흐믓했다.
그동안 전속력으로 달리는 열차처럼 자신의 삶을 돌아볼 틈도 없이 살았다.
나중에 추억이 되어버릴 순간 앞에 멈춰서는 것.
목적지로 가는 길에 사잇길로 잠시 빠져드는 건 인생의 남다른 묘미다.
멈춰설 때 마음을 가다듬으면 비로소 일들이 순조롭게 풀려가고 있음에 감사해야 하리라.
어쩌면 여행도 내 마음이 멈추고 싶은 곳으로 가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그곳이 고향이 될 수도 있다.
꼭 태생지가 아니라도 그리운 사람처럼 가슴 설레게 하는 장소가 고향이란 생각이 든다.
왔다 돌아가는 단순한 관광이 아닌,마음이 머물 수 있는 고향.
그것은 출렁거리는 상상력이고 메아리치는 꿈이다.
잊을 수 없는 경험의 시작이다.
앞으로의 인생이 지금보다 나으리라는 기대를 크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잠시 멈춰서서 온 사물을 느끼고 즐기며 기뻐하는 순간 나의 인생은 무척 향기로우리라 믿는다.
누군가의 말대로 행복은 돈이 아니라 마음의 자세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