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해설가 니시무라 아키라(西村昇)는 'CEO의 다이어리엔 뭔가 비밀이 있다'고 했다. 뛰어난 최고경영자에겐 나름의 성공 비결이 있다는 얘기다. 조선의 상인들도 그랬다. 조선의 대표적인 거상(巨商)으로 알려진 임상옥에게는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는 나름의 상도가 있었다. 국내 최초의 동아백화점을 세운 최남은 '재능과 인품을 갖춘 인재를 찾아내기에 힘써라'라고 강조했다. '조선최강상인 1∼3'(이용선 지음,동서문화사,각권 1만2천원)은 임상옥 최남 등 조선말에서 일제시대에 이르는 조선 부자 15명의 상업적 성공과정과 그 비결을 다큐소설 형식으로 그린 책이다. 평안도에서 '9형제 거부'로 통했던 철원 오씨 집안의 오희순(1845∼99년)에게 어느날 남강 이승훈이 찾아왔다. 이승훈은 오희순에게 돈을 빌려 유기공장을 차렸다가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면서 청나라 군사들에 의해 공장이 불타고 쑥대밭이 돼버린 터였다. 이승훈이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하든 빚을 갚아나가겠다고 하자 오희순은 이렇게 말했다. "자네 빚은 전부 탕감일세." 수많은 사람들이 오희순에게 돈을 빌려 장사를 했지만 난리 핑계를 대며 얼굴도 내밀지 않던 터에 이승훈만 유일하게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오희순은 오히려 이승훈에게 사업자금 2천냥을 내주며 다시 유기공장을 일으켜보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정작 오희순 자신은 술 한모금 담배 한 대 마시고 피우지 않는 근검절약으로 평생을 살았다고 한다. 1931년 서울 종로에 사상 첫 백화점인 동아백화점을 연 최남은 당시 일본인들이 서울에 세운 백화점 중 가장 컸던 미쓰코시(三越)백화점 양품부의 와타나베(渡邊)라는 젊은 점원을 전격 스카우트했다. 사업에 성공하려면 올바른 인재를 써야 한다는 경영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등짐장수로 방방곡곡을 떠돌며 익힌 세상 이치로 한말의 정·재계를 쥐락펴락하는 최고위직에 올랐던 이용익은 "사업가는 난세를 헤쳐나가는 기개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극동 러시아의 얼어붙은 항구에 수천t급 상선을 몰고 드나들었던 최봉준은 "세상의 큰 흐름을 아는 것이 장사의 요체"라고 했다. 이 책에는 이들 외에도 국내 첫 민간은행인 한일은행의 설립자 조병택,최초의 해운회사를 세운 김익승,약장수로 전국을 휩쓴 이경봉,부동산 귀재 김기덕,원산의 소금왕 김두원,화신의 총수 박흥식 등 한시절을 풍미했던 거상들의 면면과 상도가 담겨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