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성년을 맞았다. 지난 1982년 대규모 집적회로 일관공정 건설을 시작한 이후 올해로 스무해가 됐다. 반도체는 짧은 시간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한국의 중추적인 산업으로 우뚝 섰다. 덕분에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세계 첨단산업국가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단일품목으로 수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효자산업이기도 하다. 반도체 경기의 영향이 워낙 커 반도체 이외 분야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반도체착시"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다. 한국에 반도체산업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1965년.미국 코미그룹이 투자한 조립업체 고미반도체가 설립되면서부터다. 66년 시그네틱스,67년 페어차일드와 모토롤라 등 미국계 투자회사가 설립되고 69년에는 일본의 도시바가 70%를 투자한 한국전자가 설립됐다. 조립위주의 발전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웨이퍼(반도체의 원료가 되는 원판형의 실리콘)를 직접 가공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은 1974년이었다. 마이크로웨이브와 통신장비 등을 수입하던 켐코사가 미국과 합작으로 초현대식 3인치 웨이퍼 가공생산설비를 갖춘 한국반도체를 설립했다. 한국반도체가 설립된 직후 석유파동을 맞아 어려움을 겪자 이건희 삼성 회장이 개인재산으로 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한국반도체를 흡수한 삼성전자가 1982년 처음으로 대규모 집적회로 설비투자 작업을 시작하면서 한국의 반도체산업이 본격적인 발전의 길에 들어섰다. 83년엔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도 설립되면서 반도체 강국의 면모가 갖춰지기 시작했다. 현재 하이닉스에 통합된 옛 LG반도체의 구미공장과 청주공장도 각각 79년과 87년에 세워졌다. 삼성전자가 본격적인 반도체 투자에 나선지 불과 10년만인 92년 D램에서 처음으로 일본업체를 꺾고 세계 1위에 올랐다. 기술면에서도 한국은 92년부터 64메가D램 개발에서 일본업체를 앞서기 시작해 D램 시장의 주도권을 잡아 나갔다. 이때부터 한국은 D램 강국,메모리강국의 타이틀을 손에 거머쥐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D램시장과 전체 메모리시장에서 각각 1위를 차지했으며 하이닉스반도체는 D램에서 3위,전체 메모리에서 4위를 차지했다. 메모리중 가장 비중이 큰 D램의 경우 한국업체들의 비중이 40% 수준이다. 일본업체들은 삼성전자 하이닉스반도체 등 국내업체들에 밀려 철수하기 시작했으며 미국의 마이크론,독일의 인피니언,대만의 난야 등 일부 업체들만이 남아 힘겨운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4기가D램 개발과 고속메모리 개발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메모리 주도권을 잡고 있다. 세계를 장악한 한국의 메모리산업은 반도체산업은 물론 전자산업 발전의 견인차가 되고 있다. 한국이 TFT-LCD(초박막액정표시장치)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반도체기술과 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아남반도체와 동부전자가 각각 지난 1996년과 2001년 파운드리(반도체수탁가공) 사업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한국의 메모리반도체 사업기반이 탄탄했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외화를 벌어들이는 "달러박스"이기도 하다. 올 상반기중 7백8억달러에 달하는 수출액중 72억달러를 반도체에서 벌어들였다. 수출비중이 약 10.1%로 단일품목으로는 최고다. 반도체경기가 호황일때는 이 비율이 15~20% 수준까지 높아진다. 그러나 세계 반도체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비메모리분야는 한국의 반도체산업이 새로 개척해야 할 영역이다. 미국은 비메모리산업이 93%에 달하며 유럽 60%,일본 55% 등 경쟁이 덜 치열하고 수익이 안정적인 비메모리사업의 비중이 높다. 한국의 반도체산업중 비메모리비중은 12%에 불과하다. 컴퓨터시스템의 운용에 있어 비메모리 CPU(중앙처리장치)는 인텔이 장악하고 있으며 DSP(디지털 신호처리)는 TI(텍사스인스트루먼트)가,CDMA칩은 퀄컴이 각각 지배하고 있다. 부실화된 하이닉스반도체의 경영정상화도 남아있는 과제다. 자칫하면 하이닉스의 우수 인력과 기술이 중국과 대만 등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물론 반도체 학계의 우수인력 확보도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또 장비와 재료분야에서도 과도한 선진국 의존도를 낮출 수 있도록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이제 한국의 반도체산업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할 때다. "앞으로 전자분야 완성품 생산을 중국을 비롯한 후발국들이 차지할 때 우리가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핵심부품인 반도체밖에 남지 않을 것"(삼성전자 임형규 비메모리사업부 사장)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메모리의 강점을 살려 나가면서 비메모리산업 장비산업도 확충해야 한다. 김성택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