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서부에 자리잡은 중앙민족대학 부속 초등학교.이곳에서는 요즘 2백여명의 학생들이 매일 야간수업을 받는다. 칠판에는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조선어)가 쓰여져 있다. 학생과 선생님은 모두 조선족이다. 중국의 한 초등학교에 조선족 학생들로 구성된 또 다른 미니 학교가 있는 셈이다. "낮에는 한족 학생들과 함께 초등학교 수업을 받습니다. 야간에는 조선족 학생끼리 모여 조선어와 조선역사 등을 배우지요. 이를 통해 도시에 조선족 커뮤니티를 만들 겁니다." 조선족 미니 스쿨을 창설,운영하고 있는 정인갑 전 베이징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이 특수반의 이름을 '산장(三江)'학교로 지었다. '산장'학교는 중국 내 조선족 동포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와 이를 극복하려는 그들의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옌볜 조선족자치주 설립 50주년을 맞은 조선족들의 마음은 무겁다. 젊은이들이 고향을 등지면서 지린 헤이룽장 랴오닝 등의 조선족 사회가 허물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족의 대거 도시 이동은 한·중 수교가 낳은 결과다. 농사를 짓던 조선족 젊은이들이 한국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도시로 나왔다. 일부 젊은이들은 가라오케 등 음지로 흘러들었다. 중년 조선족 동포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행 비행기를 타기도 한다. 일부 뜻 있는 조선족 동포들은 조선족의 '한족화(漢族化)'를 우려하고 있다. 도시에 나온 조선족은 구심점이 없기에 뿔뿔이 흩어지게 마련이다. 정 교수가 '산장'학교를 세운 것도 그 때문이다. 학교라는 구심점을 통해 농촌에서 파괴된 조선족사회를 도시에서 다시 세우자는 것이다. 그는 "조선족들도 산업화시대에 적응해야 한다"며 "도시 조선족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장(場)이 마련된다면 지금의 위기는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선족은 한국 투자기업에 소중한 존재다. 사회 고위층으로 진출하는 조선족이 늘고 있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지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민족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도시에 조선족 커뮤니티를 설립하려는 조선족 동포들의 노력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유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