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적으로 보면 어떤 산업이든 중요한 변곡점(inflection point)들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변곡점은 외부의 충격에 의해 발생하기도 하고,때로는 산업 내부에서 '힘의 이동'에 의해 발생하기도 한다. 지금 후자와 관련하여 주목받고 있는 산업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의 효자 수출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휴대폰 산업이 그것이다. 얼마 전 월스트리트저널은 세계 최대 휴대폰 단말기 업체인 핀란드 노키아가 삼성전자에 대해 노키아의 휴대폰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경쟁에서 유리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노키아와 MS.휴대폰의 강자와 소프트웨어의 강자가 벌이는 신경전은 그 결과에 따라서는 휴대폰 산업 내부의 결정적인 변곡점으로 기록될지도 모를 일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거래로 자사의 일부 단말기 소프트웨어로 MS의 스마트폰 2002와 함께 노키아의 시리즈 60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게 됐다. 그러나 노키아와 MS를 주체로 놓고 보면 그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휴대폰 단말기가 MS의 소프트웨어에 크게 의존하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휴대폰만 잘 팔면 될 텐데 노키아는 왜 MS를 막으려는 것일까. PC산업에서 하드웨어가 주(主)였고 이를 팔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그냥 끼워 주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MS가 들어 그 주종관계가 뒤바뀐 사실을 노키아는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때 MS가 노키아에 접근했을 때 이를 거절한 것도 그렇다. PC산업에서 과거 IBM과 MS간 동맹이 어떻게 귀결됐는지를 생각했을 것이다. MS가 결국 IBM을 절묘하게 활용하고 만 셈이 됐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PC산업에서의 '학습효과'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노키아는 휴대폰의 하드웨어가 아직은 중요하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런 노키아로서는 PC산업에서와 같은 '힘의 이동'을 원치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자면 소프트웨어 시장은 충분히 경쟁적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PC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MS는 특히 경계대상이다. 노키아가 지금 자신이 보유한 소프트웨어의 오픈 또는 차세대 소프트웨어의 개발협력에 나서는 것은 바로 이런 인식에서다. MS의 입장에서 보면 반독점당국만이 아니라 학습효과로 무장한 노키아의 이런 방어벽 역시 넘어야 할 산이다. 노키아의 의도대로 휴대폰이 PC와 다른 차별성을 보이면서 원하는 구도로 굴러갈지,아니면 MS가 생각하듯 결국 시간문제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어쨌든 우리나라 휴대폰 업체로서는 이 신경전이 호기일 수도 있다. 변곡점을 둘러싼 힘의 충돌이 일어나는 이런 시기는 잘 활용하면 부족한 기술을 확충하거나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