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 31일 오후 6시. 송년의 밤을 보내기 위해 막 사무실을 나서려던 법무법인 광장의 강정혜 변호사(38)에게 대기업 계열사인 A정보통신시스템 관계자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큰일났습니다.정부가 우리 회사에 제재처분을 내린답니다.시간이 없으니 빨리 대응방안을 만들어 주세요" A사가 통신시스템을 납품한 모 정부부처에서 A사에 대해 규정 위반 등을 이유로 곧 처벌을 내린다는 첩보였다. 강 변호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3일. "통지서가 날아오기도 전이라 무슨 이유로 제재를 내리는 지 조차 알 수 없었어요.계약서 내용과 실제 공사의 차이점을 검토하고 관련 법률을 뒤져 '정부처분은 부당하다'는 논리를 만들었죠" 3일 뒤 도착한 통지서엔 "다른 중소업체에 하도급을 줄 때는 반드시 서면으로 작성하라"는 계약 조항을 A회사가 위반했다고 적혀 있었다. 물론 강 변호사는 이런 내용을 미리 간파하고 대비했다. 즉 "특수한 경우에는 서면계약을 안할 수 있다"는 관련법률 문구에 착안,정부에 호소했다. 결론은 성공이었다. 행정처분 발효를 며칠 앞둔 올해 1월9일이었다. "연말연시 기분은 못냈지만 기분 좋은 열흘이었죠.기뻐하는 의뢰인을 보면서 '변호사가 되길 잘했구나'란 생각이 들었지요" 강 변호사는 광장에서 기업법률자문과 소송업무를 맡고 있다. 지난 99년 국내 최초의 제조물책임법(PL법)관련 소송으로 알려진 "자동차 급발진 사고"에서 볼보사를 대리했다. "급발진이 차체 결함 때문에 발생했다고 볼 근거가 모자란다"는 승소판결을 이끌어냈다. 요즘에는 외국계 건설업체가 "(주)대우를 대우인터내셔널과 대우건설로 분할한 것은 무효"라며 제기한 소송을 대리하고 있다. 회사 후배인 서윤정 변호사는 그에 대해 "연차가 쌓일수록 더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강 변호사가 지난 92년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광장(합병전 한미)을 선택할 때다. 대형 로펌을 통틀어 여성 변호사가 3명에 불과한 시절이었다. "스물여덟 살 짜리 여성변호사"라는 타이틀은 큰 부담이었다. "일을 못하면 "여자니까..."라는 소리가 나올까봐 더 열심히 달라붙었죠.3년쯤 지나니까 회사에서 "후배 여성 변호사가 있으면 데리고 오지"라고 하더군요" 활짝 웃는 강 변호사의 표정에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 -------------------------------------------------------------- [ 프로필 ] 1986년 서울대 법학과 졸업 1989년 31회 사법시험 합격 1992년 사법연수원 수료 1992년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현재) 1996년 경실련 자문 변호사 2000년 미국 버클리대 법학석사(환경법 전공) 2002년 서울시 환경분쟁조정위원(현재) 2002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심의위원(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