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는 중요하고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 상공에 피어 오른 버섯구름 이후로,뉴욕의 두 빌딩에 여객기들이 잇따라 충돌하는 광경보다 더 충격적인 장면은 없었다. 그러나 한해가 지난 지금,미국을 살피면,미국 사회가 그 참극을 예상보다 훨씬 잘 극복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수천 목숨을 잃고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큰 경제적 손실을 보았지만,미국 사회는 별다른 혼란을 겪지 않았다. 경제도 그리 큰 타격을 입지 않았으니,현재의 불경기는 주로 증권시장의 거품이 꺼진 데서 나왔다. 군사력은 오히려 훨씬 강화되었다. 무엇보다도,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누리는 권위를 이전보다 훨씬 강력하게 국제 무대에 투사하기 시작했다. 테러에 대한 응징이었던 아프간전쟁에서 뚜렷이 보여준 것처럼 미국의 군사적 우위는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다. 미국의 고전을 예언한 '전문가들(pundits)'을 부끄럽게 만들면서,오랜 전쟁으로 단련된 적군들을 병력 손실이 거의 없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격파했다. 그리고 그런 군사력을 바탕으로 외교와 군사정책을 새로 세우기 시작했고,다음 표적인 이라크를 공략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미국은 로마제국 이후 처음으로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누리고 있다'는 얘기가 자주 나온다. 이것은 꼭 맞는 얘기는 아니다. 로마제국의 군사적 우위는 우월한 무기나 전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병사들의 강인함과 장군들의 뛰어난 지휘력에서 주로 나왔다. 제2차 포에니전쟁에서 로마 본토를 침공한 한니발의 카르타고군대에 대해 로마가 내놓은 것이 '지연 전술'이었다는 사실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 로마군대는 너른 평원에서 주로 기병들로 이루어진 군대와 맞설 때 약한 면을 보였다. 거의 전적으로 '말탄 궁수들(horse-archers)'로 이루어진 파르티아제국 군대에 특히 약했으니,접전을 피하고 후퇴하면서 화살을 쏘아대는 파르티아군대의 전술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기원전 53년 리시니우스 크라수스가 이끈 로마군대가 수레나스가 이끈 파르티아군대에 완패한 '카리(Carrhae) 싸움'은 그런 전술적 문제점을 잘 보여줬다. 지금 미국군대는 역사상 처음 보는 전술적 우위를 누리고 있다. 미국의 병기들은 대부분 다른 나라들은 지니지 못한 것들이고,그런 병기들이 주는 전술적 우위는 대단하다. 게다가 그런 병기들이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앞선 정보처리기술들과 결합하면서,전술적 우위는 한결 더 커진다. 그래서 미국에 맞선 이라크 세르비아 아프가니스탄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걸프전쟁에선 토마호크와 스텔스기가 큰 몫을 했고,코소보전쟁에선 정밀폭탄이 정교한 작전을 가능하게 했고,아프간전쟁에선 각종 무인비행기들이 활약했다. 로마제국과 달리 미국은 원하는 시기와 방식으로 전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앞으로 '악의 축' 국가들과의 전쟁들이 미국의 일방적 공격과 승리로 끝나리라는 것을 가리킬 뿐 아니라,예상 가능한 미래에도 미국의 군사적 우위는 지속될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9·11테러로 마음을 굳힌 미국은 그런 군사적 우위를 이전보다 훨씬 과감하게 이용하겠다고 선언했다. 놀랍지 않게도,세계 여러 나라들은 새롭게 인식된 '미국 중심의 평화(Pax Americana)'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대표적 예는 북한의 움직임이다. 북한이 갑자기 외교적 화해와 경제적 개방을 내세운 것은,종전의 정책은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충돌로 이어지고,그런 충돌의 결과는 너무 명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북한의 빠르고 유연한 움직임과는 대조적으로,우리 정부는 새로운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듯하다. 우리 정부의 눈길은 오로지 평양으로만 향하고,이 세계의 중요한 일들이 이루어지는 워싱턴엔 곁눈도 주지 않는다. 북한의 달라진 태도는 '햇볕 정책'의 성공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실패를 가리킨다는 사실도 애써 외면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은 임기에 미국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써야 할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