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누구를 위한 국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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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업(김대중 대통령 차남)은 양보할 수 있다."
한나라당 소속인 나오연 국회 재정경제위원장이 10일 오전 국회에서 뜻밖의 발언을 했다.
같은 당 이한구 의원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홍업을 양보하다니요?" 옆자리의 안택수 의원이 지원사격에 나섰다.
"홍업이 국정감사 증인에서 빠지면 앙꼬없는 찐빵이다."
그러나 논의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민주당은 물론 한나라당 의원들조차도 '이미 물건너간 일 아니냐'는 표정들이었다.
안정남 전 국세청장의 증인채택 여부에 대해서도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은 "미국에 가있는 사람을 어떻게 부르느냐"고 반문했다.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곧이어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성원건설 전윤수 대표이사의 증인채택 문제로 입씨름을 벌였다.
전씨는 공적자금 4천여억원을 받은 대가로 홍업씨에게 14억원을 건넨 인물이다.
그러나 이 마저도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의결정족수가 모자라서다.
이날 오전 소집된 재경위에 한나라당 의원은 전체 11명중 4명만 참석했다.
그러나 앞서 열린 한나라당 주요당직자 회의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회의에선 금융감독원 감사원 등 관련기관의 자료제출 거부로 공적자금 국정조사 준비가 난관에 봉착했다는 성토가 쏟아졌다.
홍준표 의원은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기관은 우리당 단독으로라도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서청원 대표는 "(자료제출 거부시 3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다는)법을 금감원과 감사원에 팩스로 보내시오"라며 한껏 의욕을 내비쳤다.
회의는 오찬자리로까지 이어질 정도로 열기가 높았다.
상임위 국정감사와 공적자금 특위의 국정조사에 임하는 한나라당의 태도가 이처럼 확연히 차이나는 이유가 뭘까.
공적자금 국정조사에는 3일간의 TV청문회 일정이 포함돼 있다.
야당으로선 현 정부를 흠집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경우에 따라선 '청문회 스타'도 탄생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경제통 대신 다른 의원이 특위위원을 고집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누구를 위한 국정감사인지 헷갈리는 시국이다.
김병일 정치부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