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로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WTC)가 무너진지 1년. 1백10층짜리 쌍둥이 빌딩이 서있던 자리는 그 날의 참혹상을 알리듯 원자폭탄 낙하지점과 유사한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로 변했다. 오늘도 이곳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지만 들뜬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은 침묵 속에서 지하 8층 깊이의 웅덩이를 물끄러미 응시할 뿐이다. 그라운드 제로 현장에서 숨졌거나 실종된 사람은 2천8백19명(뉴욕시 최종 집계). 이중 1천3백79명은 유전자(DNA) 감식 등으로 신원이 확인됐으나 나머지는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인근 빌딩 옥상에서는 요즘도 시신조각이 발견된다. 주변 건물들도 테러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 해온 인접 건물들은 대부분 보수공사를 받고 있다. 뉴욕시는 이달초 업무용 건물의 입주율이 83%에 달했다고 밝혔으나 실제 수치는 이보다 낮으며 경기도 훨씬 못하다고 지역상인들은 입을 모은다. 청바지 가게 '첼시 진'을 운영하는 데이비드 코헨씨는 "지역 경기가 과거의 절반에도 못미친다"고 토로했다. 세계 금융중심지인 월가의 상황은 보다 심각하다. 테러이후 6개월간 2만여명이 해고됐지만 감원공포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게다가 부정회계 스캔들까지 발생, 헨리 블로짓(메릴린치), 잭 그루브먼(살로먼스미스바니) 등 스타급 애널리스트 마저 이곳을 떠나면서 과거의 활기를 완전히 상실한듯 하다. 자연히 맨해튼내 건물 공실률이 급증, 평방 피트당 58.11달러에 달했던 A급 사무실 임대료가 지금은 48.60달러로 20% 가까이 폭락했다. 테러 발생 1년이 지난 지금 뉴욕 증시관련 3대지수가 모두 10% 이상 급락한게 이런 분위기를 대변해 준다. 제2의 테러 및 대 이라크 보복전쟁 가능성과 함께 뉴욕 증시는 지금도 크게 출렁거리며 세계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뿐만 아니다. 항공사 자동차렌털 여행업계에도 불똥이 튀어 테러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작년말까지 총 12만5천명에 이른다고 CNN머니는 추산했다. 당장 보험업계의 손실(4백2억달러)을 제외하더라도 기업들의 보험료 부담과 보안비용 증가 요인을 감안할 때 9.11 테러는 수천억달러의 후유증을 남긴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물론 그동안 미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와 11차례에 걸친 금리 인하를 통해 어느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미 경제는 작년 4분기중 1.3%의 마이너스 성장을 보인 뒤 올 1분기 5.6%의 가파른 반등세를 나타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처방은 이제 한계에 이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단기적 충격에서는 벗어났으나 테러 공포는 미국은 물론 전세계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특히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려 기업에 상당한 비용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뱅크온인베스트먼트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앤서니 찬은 "테러 공포와 이라크에 대한 공격 가능성은 소비심리를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제시카 매튜 소장도 "9.11 테러 이후 미 정부가 경제 등 광범위한 분야에 개입하고 있지만 그 충격은 세계 어디서나 감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포의 1년'이란 이코노미스트지의 진단을 실감케해 주는 대목이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