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가 일본식 디플레이션에 빠질 공산이 크다는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의 보도는 우리경제와도 무관치 않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주말 국내 최고경영자들이 다수 참석한 가운데 제주도에서 열린 제1회 CEO포럼에서도 한국의 디플레 우려를 둘러싸고 전문가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오히려 우리경제의 당면과제로 대두돼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디플레이션이란 지속적인 물가하락을 의미하고,이는 곧 세계경제가 장기침체국면에 돌입할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는 경고와 다를바 없다. 디플레 우려의 배경은 대략 세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우선 세계적인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치 하락 가능성이 그 첫번째다. 지난 90년대 10여년 동안 거침없는 상승세를 보였던 세계증시 주가가 2000년 이래 수년째 내리막을 걷고 있고,부동산 가격도 조만간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주장이다. 다음으로는 경쟁격화로 인한 상품가격 하락 가능성이다. 특히 지난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이 '죽기살기식'가격인하 경쟁을 벌일 것이라는 게 주된 배경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여기에 덧붙여 세계 주요국들의 저성장에 주목하고 있다. '잠재성장'에도 못미치는 저성장은 잠재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물가하락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가능성에 더욱 부채질을 가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임박설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유가가 급등할 것이고,이는 일시적으로 물가를 올릴 위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세계경제의 성장을 억제해 디플레 위험을 높이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주말의 CEO포럼에서 모건스탠리 아시아지역 시장분석 책임자인 앤디 시에 본부장이 한국의 디플레 위험을 강조한 것도 배경은 비슷하다. 제조 및 수출부문에서 중국의 영향 등으로 가격인하가 불가피한데다 내수시장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부동산 시장이 진정되면 디플레 위험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아직 소수의견에 불과할 뿐 우리경제의 디플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이지만 굳이 외면할 일은 아니다. 근래들어 주택구입 등과 관련한 개인부채 증가가 두드러지고 있다. 주택가격이 안정되면 그같은 부채상환 부담은 더욱 큰 짐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당국은 디플레이션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산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나타날지 모르는 혼란 또는 급격한 경기위축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책수단을 강구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