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우려되는 학습기피증 .. 韓駿相 <연세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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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루사가 할퀴고 간 지역이 신음하고 있다.
하늘은 높아지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 계절을 부르는 초대치고는 너무 혹독했다.
크고 작은 물 손님(태풍)들이 매년 이맘 때에는 어김없이 찾아오는데도 수해방지 대책은 늘 뒷북만 친다고 아우성이다.
'치수(治水)는 국가관리의 기본'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탓이다.
'여력이 있으면 틈틈이 준비하며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공자의 말씀이 이번에도 허사가 됐다.
우리 국민들처럼 평생학습을 소홀히 하는 나라도 없을 성 싶다.
35세 이상의 성인 가운데 평생학습기관에서 자기개발을 시도하는 비율은 고작 3%다.
이는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속하는 수치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 국민들의 평생학습 참여율은 평균 20%를 웃돈다.
그런데 우리 국민 40%는 '여가가 생기면 텔레비전이나 보겠다'는 반응이다.
앞으로는 직장마다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될 텐데,쉬는 날 국민들이 무엇을 하며 보내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
'여가에 책을 읽는다'는 대학생은 10% 미만이고,대부분의 중·고교생들 또한 여가에 컴퓨터하며 보내겠다는 소식을 접하면 더욱 답답해진다.
이러면서 우리 교육의 '경쟁력'을 논하고,'삶의 질 향상'을 거론하니 헛헛하다.
우리 국민들은 '학습질환'을 앓고 있다고 본다.
초등학생은 물론 대학생들마저도 배우고 익히기를 체질적으로 게을리하고 있다는 증거가 한두개가 아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책을 읽고 배우기를 싫어한다.
이 같은 학습질환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더욱 도지기 시작한다.
학습기피증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옮겨놓는 세균이 바로 '대학입시'다.
학습질환에 전염되면서부터 사람들은 학교졸업을 자기학습에 대한 면죄부로 수용한다.
아예 졸업장을 학습기피를 위한 면허증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우리 청소년들은 물음표로 학교에 들어가서 마침표로 졸업을 한다.
하여간,어른 아이를 막론하고 우리 국민 중 약 30%정도가 '책 읽는 것이 싫을 뿐만 아니라 배우기가 습관이 되지 않아서 학습하기 괴롭다'는 반응을 보면 우리의 학습질환 증세는 아주 고질적이다.
이런 점에서는 기업인이나 공무원 혹은 전문직 종사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배우기와 읽기는 국가경쟁력의 온상이며 토대이기에,사회 곳곳이 '배움의 장'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
지식기반의 학습사회가 되려면 기업도 사회도 모두 '배움의 교실'이 돼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기업이나 공무원사회 교수사회는 서구사회의 학습조직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서구기업의 책임자들은 한달 평균 7백여쪽을 읽는다.
1년이면 20여권의 책을 읽고 소화해내는 독서 마니아들이 바로 그들이다.
우리의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석달에 평균 1백쪽정도를 들여다 보고 있다.
'책맹(冊盲)'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그래서 우리의 기업 간부들은 저들의 '파워 독서력'에 숨이 가쁘기만 하다.
이런 학습기피증은 대학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책을 가장 읽지 않는 전문직종 중의 하나가 교수직'이라는 어느 여론조사의 지적에는 가슴이 뜨끔해진다.
언론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교수들 중 60%정도가 한햇동안 전공도서 이외의 책을 한권도 읽지 않는 실정이다.
전공영역이라고 해도 연간 평균 5권 이상을 읽지 않은 교수도 수두룩하다.
고위 행정보직자들일수록 책과 거리가 멀다는 대목에 이르면 한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보고서 저런 공문,이런 신문기사 저런 글들마저 읽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겠지만,교수로서 계면쩍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서일까 '존경하는 교수가 없다'고 응답한 대학생들이 10명 중 7명이나 된다고 한다.
원래 천고마비의 계절은 독서의 계절이 아니다.
위험과 재난을 대비해야 하는 계절이다.
말이 살찌기 시작하면 북방 오랑캐들이 어김없이 우리 땅에 쳐들어 올 것인 즉 그에 잘 대비하라는 뜻에서 만들어진 고사성어가 바로 천고마비라는 말이기에 하는 소리이다.
천고마비 계절을 맞이하려면 그 다음의 절기맞이를 준비해둬야 한다.
제대로 된 사람에게 독서와 배우기는 천고마비 계절에만 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매일 밥 먹듯이 하는 '일상적인 일'이어야 한다.
john@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