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두산중공업.대한상의 회장] "난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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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하고 싶은 얘기는 한다 그거지."
올해 우리 나이로 예순셋이 된 박용성 회장은 자유롭다.
국내에선 두산중공업 회장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해외에선 세계유도연맹협회 회장과 IOC 위원 등 총 90개에 달하는 공식 직함에 묶여 있지만 일 그 자체를 즐긴다.
즐기는 만큼 매사에 적극적이고 스스럼없다.
특히 거침없는 말투는 또래 오너 경영자들과는 자못 다르다.
정부정책, 재계관행, 노조활동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비판 수위는 넘칠 듯 아슬아슬하다.
"정부가 외국인들 집이랑 교육문제는 해결 안해 주고 땅만 내주면 동북아 비즈니스센터가 될 줄 안다"며 "허허벌판에서 천막 치고 살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재벌 2세들을 만나면 "30대 그룹중 왜 16개의 주인이 바뀌었는지 아느냐"며 "식견이 부족한 오너가 경영권을 잡고 있으면 회사가 망한다"고 강조한다.
"난 하고 싶은 얘기는 해야 해. 하지만 옳은 말만 하니까 '너 어디 가려우냐'는 소리는 안 듣고 살아.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그런 소리 들어도 싸다 생각하는 모양이지."
확실히 그렇다.
지금껏 큰 구설수에 휘말린 일이 없고 적도 만들지 않았다.
"농사 인구는 전체국민의 8.6%에 불과한데 86%가 농민인 것처럼 감싸려고 하면 안되지"라고 말했다가 대한상의에 농민 단체가 몰려와 거름 세례를 받을 뻔한 적이 있을 뿐이다.
박 회장 표현대로 '일부에서 보기에 아슬아슬한 선에서 놀기 때문에' 정부에 찍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관료들과도 비교적 사이가 좋다.
특히 진념 전 재경부 부총리와는 서울대 상대 동기동창으로 죽이 잘 맞기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총리직을 제안받았으나 강력히 고사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할 말 다하면서 인정받는 비결이 뭘까.
"왜긴 왜야. 내가 감정 있어서 하는 소리가 아닌 걸 다들 아는 거지. 상의 회장인 내가 용비어천가만 불러봐. 상의는 회비도 못 걷을 것 아니야. 적당한 선에서 정부 비판도 하고 매스컴도 타고 좋잖아."
그의 '할 말'은 어느 정도 열매도 맺었다.
자체 분석에 따르면 대한상의가 거의 매주 발표하는 '정부에 대한 건의'중 60% 이상이 이미 정책에 반영됐거나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그 자신도 '오너 가족' 출신이면서 재계에 대해서도 매섭다.
특히 능력없는 오너는 경영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확신한다.
"30대 그룹중 16개가 망했어. 이런 저런 핑계를 대지만 결국 제일 큰 잘못은 자기 능력에 넘치는 사업에 손을 대고 좌지우지했던 회장들한테 있는 거지."
"꼭 전문경영인이 맡아야 하는 것은 아니야. 능력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거지"라며 "삼성을 봐. 이건희 회장이 맡은 다음에 더 잘 나가고 있잖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전문경영인의 중요성을 여러번 강조해 오고 있다.
박세리 박찬호 뿐 아니라 김정태 윤종용 같은 사람들이 스타가 돼야 한다는게 그의 믿음이다.
"지금 경영대학에 다니는 사람들 입장에서 스톡옵션으로 수십억원의 차익을 남기는 김정태 행장 기사를 읽으면 얼마나 매력적인 인센티브가 되겠어. 내가 열심히 하고 잘 풀리면 언젠가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구나 생각할 거 아니오."
두산중공업 경영을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서는 경영자로서 몇 점을 주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나는 하는 것 아무 것도 없어요.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하니까 보고만 받지. 잭 웰치가 한 유명한 얘기가 있잖아요. GE는 16개 사업부가 있는데 어떻게 다 알아서 경영을 하느냐고 누가 물었더니 자기는 그 사업들을 모르지만 누구를 어디에 앉혀야 제일 잘 될지는 알고 있다고."
그는 식견 있는 오너 가족은 경영에 참여하면서 스웨덴의 성공한 기업 볼보나 사브같이 '비즈니스 패밀리'가 될 수 있지만 반대라면 '패밀리 비즈니스(가족 경영)' 꼴이 난다며 매킨지 컨설팅의 개념을 빌어 얘기하곤 한다.
"우리 가족? 패밀리 비즈니스가 되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지. 자기가 맞는 일만 하고 못하겠으면 남한테 맡겨요."
그는 솔직하다.
"우리도 물론 잘못 많이 했어. IMF 때 사업 다 팔아야 했던게 다 우리가 잘못해 그런거지 뭐."
박 회장의 최근 고민거리는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파업했던 두산중공업 노조와의 화해.
단체임금 협상을 앞두고 있지만 해결이 쉽지 않다.
"노사간에 화합을 이뤄 동상이몽을 동상동몽으로 만드는게 앞으로 해야할 가장 큰 일이지만 한전하고 수의계약하던 공기업(한국중공업) 때만 생각하는 노조와 타협할 수는 없어. 언제 자기들이 나한테 물어보고 파업했나"고 말한다.
"경쟁하려면 코스트를 낮춰야 해. 지금 고되고 어렵다고 미봉책을 쓰고 싶진 않아. OB맥주 팔아서 두산중공업을 산 이유는 경쟁력있는 회사로 클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지."
인생철학을 물어봤다.
"진인사 대천명이야. 열심히 사는 거야. 실수? 수도 없이 했지."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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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1940년생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 졸
65년 한국상업은행 입사
74년 두산그룹 기획실장
84년 동양맥주 사장
86년 대한유도회장
93년 두산그룹 부회장
94년 동양맥주 회장
95년 국제유도연맹(IJF) 회장(현)
96년 OB맥주 대표이사 회장
2000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서울상공회의소 회장(현)
2001년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회장(현)
2002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