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1년 이집트 정부는 놀라운 정보를 입수했다. 골동상들 사이에 고대 이집트시대 파라오(왕)가 사용하던 파피루스가 나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카이로박물관은 조사 끝에 테베 서쪽 룩소르 부근에서 파라오들의 무덤군인 "왕들의 계곡"을 찾아냈지만 이미 도굴꾼에 의해 모두 파헤쳐진 상태였다. 그래도 혹시나 한 미국의 시어도어 데이비스가 이집트정부의 허가를 얻어 1902년부터 12년동안 네곳의 무덤을 발굴했지만 아무 것도 못 얻은 채 영국귀족 조지 카나번에게 발굴권을 넘겼다. 카나번과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는 단하나 드러나지 않은 18왕조 12대(BC 1361~1352)투탕카멘(Tutankhamen)왕의 무덤을 찾아 6년을 헤맨 끝에 22년 람세스 2세와 6세,무덤 사이에서 3천년 이상 감춰졌던 왕의 잠자리를 발견했다. 18살에 숨진 소년왕의 무덤에선 1백10kg짜리 순금 관(棺)과 황금가면(11kg)등 호화찬란한 금은보화와 철 향료 등 2천여점의 귀중한 유물이 나왔다. 오늘날 카이로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은 대부분 이곳 발굴품이라고 할 정도다. 그러나 이 엄청난 발견 뒤 무슨 일인지 발굴 관련자들이 계속 사망하는 불행이 발생했다. 23년 카나번이 모기에 물려 죽은 걸 시작으로 무덤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 13명이 원인 모를 병이나 자살 등으로 세상을 뜨자 급기야 '투탕카멘의 저주'라는 말이 생겼다. 우연일 뿐이라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의문은 가시지 않았고 결국 투탕카멘의 사인(死因)이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너무 일찍 죽은데다 발견 당시 미라상태가 나쁘고 뇌에 치명적 손상이 있었다고 발표됐기 때문이다. 당시 파라오와 신관의 암투가 심했다는 것도 왕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건 아닐까라는 추측을 부채질했다. 최근 또다시 미라의 X레이 사진 등을 분석한 결과 총리에 의해 살해된 듯하다는 발표가 나왔다. 카터가 관을 열었을 때 왕은 소담스런 꽃다발 아래 편안한 얼굴로 누워있었다고 한다. 3천3백년이 지난 지금 사인을 규명한다고 법석 떠는 후손들에게 소년왕이 과연 고맙다고 할지 그냥 좀 내버려두라고 할지 궁금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