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폭으로 하면 펑퍼짐하고 디자인이 딱 떨어지지 않을 수 있으니까 15인치짜리 9폭으로 하세요.원단도 훨씬 좋아요." "원색 말고 다른색은 없나요? 빨간색 치마는 촌스러운데..." 추석을 엿새 앞둔 15일 오후 5시. 동대문종합시장 2층 혼수매장 한 점포에서 예비신부 김지영씨(일산,26)가 흥정을 하고 있다. 주변 다른 점포에도 한복을 사러 나온 젊은 커플들과 손주를 데리고 나온 아주머니 등 가족손님들이 북적이고 있다. 재래시장 추석경기가 싸늘하다지만 그래도 모처럼 시장에 활기가 넘친다. 김지영씨는 한참 흥정한 끝에 대추색 홍치마와 연분홍 저고리 옷감을 골랐다. 김씨는 "두루마기를 빼고 신랑 한복까지 70만원대에 샀다"며 "버선 노리개 아얌까지 덤으로 얻었으니 인터넷 공동구매에 비해서도 10%는 싼 셈"이라고 좋아했다. 그는 "다음주엔 공짜로 얻은 함을 찾아갈 예정"이라며 약혼자와 함께 1층 침구매장으로 내려갔다. 동대문종합시장이 한복상가로 명성을 얻고 있는 비결은 가격과 솜씨에 있다. 70년대부터 2대째 한복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명성주단 오용택 사장은 "이곳 상인들은 좋은 원단을 싸게 사서 한복을 만들기 때문에 시중가격에 비해 적어도 20∼30%는 싸게 팔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 사장은 "지방 상인들은 여기서 물건을 사가지고 내려가 소매를 한다"면서 "소매고객도 이곳에 오면 마음에 드는 옷감을 골라 한복을 싸게 장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곳에는 패물 사주 양장 등을 가져오면 청실홍실과 혼서지를 넣은 함을 공짜로 제공하는 한복집이 많다. 이런 서비스를 더해도 혼수한복 한 벌 값은 30만∼40만원대에 불과하다. 액세서리는 대개 끼워준다. 따로 사도 그리 비싸지 않다. 노리개(1만∼5만원) 아얌(5만∼10만원) 숄(10만∼15만원선) 등을 다른 곳보다 20∼30% 싸게 판다. 굽 높은 꽃신은 1만2천∼1만6천원이면 살 수 있다. 남자용 갖신은 3만5천∼4만원대. 기성 돌복이나 어린이한복은 2만5천∼4만원대면 고급으로 친다. 이곳엔 전통한복 스타일을 고집하는 집이 대다수지만 개량한복집도 10여개 생겼다. 7만∼10만원대에 살 수 있는 개량한복은 지퍼를 달고 옷고름을 없앤 스타일이 인기다. 며느리 개량한복을 샀다가 바꾸러 나온 성명자씨(49·마포)는 "백화점에 비하면 반값에 불과하다"면서 "단골이 되다보니 물건을 바꾸거나 애프터서비스를 받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성수기에 한복을 찾으려면 옷감을 고르고 나서 일주일에서 열흘은 걸린다. 급하게 맞출 때는 하루 만에 옷을 지어 택배로 부쳐주기도 하는데 이때는 대개 10%의 '급행료'를 받는다. 우편으로 따지면 특급이나 속달에 해당한다. 동대문종합시장 상인들은 요즘 고민에 빠져있다. 해가 갈수록 한복을 입는 사람들이 줄기 때문이다. 한 상인은 "디자인도 다양하고 입기 편한 한복들은 쏟아져 나오는데 정작 입을 사람들이 없다"며 "혼수한복도 춘추,한여름,동복 등 세 벌이 기본이었는데 요즘은 달랑 한 벌로 그치기 때문에 명맥 잇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은 "대통령도 한복을 별로 입지 않는데 캐주얼에 익숙한 요즘 젊은이들이야 오죽하겠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