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17일 첫 대면은 대화시간이 오전,오후 합쳐 2시간30분 정도에 불과했지만 양측 모두에 커다란 수확을 안겨 주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에 대해 김 위원장의 잘못 인정과 사과를 받아내는 소득을 챙겼다. 물론 피해자 가족들은 "납치가 확인되고 피해자 6명이 사망한 상태에서 유감 표명 한 마디로 과거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느냐"고 분노하고 있다. 그러나 납치 자체를 부인해온 북한이 이날 이 사실을 시인한 것은 외교 스타일의 대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라는게 도쿄 외교가의 일반적 관측이다. 이에 따라 지난 2000년 11월 11차 교섭 이후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일 수교협상은 급물살을 탈 것이 분명해졌다. 고이즈미 총리도 공동선언 발표 후 '납치 피해가 확인됐는데도 배상 요구를 하지 않고 수교협상을 재개할 것이냐'는 일본 기자들의 질문에 "10월 중순께 다시 시작하겠다"며 협상 재개 의사를 거듭 밝혔다. 또 고이즈미 총리는 미사일 실험 동결, 핵 문제에 관한 국제 합의 준수, 괴선박 침입 재발 방지 등에 대해 북한의 약속을 받아내 안전보장과 지역 긴장완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는 남한 및 미국과의 대화에 보다 진지하게 임해 달라고 김 위원장에게 요청했으며 김 위원장으로부터 "대화의 문을 열어 놓고 있음을 미국에 전해 달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해 이번 회담이 동북아 평화 유지에 도움이 될 것임을 내비쳤다. 그러나 일본이 고이즈미 총리를 통해 얻어낸 수확에 비하면 북한이 챙긴 소득은 훨씬 실질적이고 효과가 클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최고 권력자인 김 위원장의 솔직한 사과로 국제사회에 좋은 이미지를 던져주는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북한이 대결형 외교정책에서 협조형 노선으로 전환한 것이 확실해지면 이번 회담은 닉슨의 중국 방문에 필적할 대사건이 될 것"(다나카 아키히코 도쿄대 교수)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치,군사적 측면 이상으로 당장 큰 변화가 나타날 분야로 단연 경제를 꼽고 있다. 국교 정상화 교섭이 급피치를 올리고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과 경제협력 형태로 북한에 막대한 일본 자금이 제공되면 이는 북한의 개방과 경제 개혁 실험을 한층 앞당기는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다. 일본인 납치에 대한 사죄의 대가로 '경제지원'이란 실리를 챙긴 것이다. 한반도 전문가인 이즈미 하지메 시즈오카대 교수는 "북한 경제외교의 폭과 속도가 훨씬 넓고 대담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일본의 엔 차관과 화교 자본이 돈줄 역할을 했던 과거의 중국과 달리 북한은 한국 외에 특별히 기댈 만한 구석이 없다는 것을 이같은 분석의 근거로 들고 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