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사회에서 달은 일상생활을 좌우했다. 사람들은 달의 차고 기우는 정도에 기대 땅을 일구고 고기를 잡았다. 달은 또 여성의 생리를 좌우한다고 믿었던 만큼 생명력의 표상이었다. 특히 한국인의 우주론과 세계관 인생관에서 달이 차지하는 몫은 달과 해가 똑같은 크기로 함께 그려진 '일월곤륜도'에서 보듯 해보다 결코 적지 않았다. 우리 조상들은 또 달은 무엇이든 드러내고 구분짓는 해와 달리 은은하고 부드러운 가운데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믿었다. 특히 환하고 둥근 보름달은 넉넉함과 번영, 너그러움과 원만함 푸근함 은근함의 상징으로 생각했다. 때문에 정월 대보름과 한가위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다. 말없는 달이지만 모든 걸 들어주고 이뤄주리라 믿었던 셈이다. 보름달에 나타난 형상을 보며 목걸이를 한 여자나 집게발을 쳐든 게의 모습을 떠올린 유럽사람들과 달리 계수나무아래 옥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고 상상한 것도 풍요롭고 평화로운 또하나의 세상을 꿈꿨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이런 상상과 꿈은 1969년 7월 21일 아폴로 11호 승무원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고요의 바다에 착륙함으로써 깨졌다. 프랑스의 쥘 베른이 로켓 연결 열차가 달까지 달린다는 공상과학소설 '달나라 여행'을 발표한지 1백년 만에 허상이 아닌 현실로 바뀌었던 것이다. 이로써 달에 보인 모습도 울퉁불퉁한 구덩이 중 높은 쪽은 햇빛을 받아 밝고 낮은 쪽은 어둡게 보이는 탓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달은 그래도 여전히 갈 수 없는 먼 곳에 있었고 따라서 대보름과 한가위 때면 간절한 소망을 털어놓는 대상이었다. 인터넷 결혼정보업체 닥스클럽이 20~30대 미혼남녀에게 물어 본 결과 이번 추석에도 보름달을 보며 '멋진 애인과의 만남'(24.2%) '더 좋은 직장이직'(20.8%) '가족 건강'(20.4%) 등을 빌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의 트랜스오비털사가 정부로부터 '달 탐험' 허가를 받음으로써 조만간 민간인의 '달여행'이 가능해지리라는 소식이다.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일도 이제 끝인가.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