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집값이 도둑보다 무섭다..姜萬洙 <디지털경제硏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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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한채 마련하기 위해 저축을 하다 보면 집값이 먼저 알고 올라간다.
도둑이야 있는 자를 뺏고 문단속을 잘하면 막을 수도 있지만,집값 오르는 것은 없는 자를 뺏고 문을 걸어 잠가도 막을 수 없다.
도둑이야 경찰에 신고하면 잡을 수도 있지만,집값 올리는 사람은 신고할 데도 잡는 데도 없다.
집 없는 사람에게는 집값 오르는 게 도둑보다 무섭다.'(2001.8.23 다산칼럼)
'이곳으로 오며 꿈이 있었다면 열심히 모아 더 넓은 평수의 집으로 옮겨가는 것이었습니다.
어제 시누이가 전화해 하는 말이 지금 자기 집이 1억원이 올랐다는데,우리는 고생해 간신히 모은 돈을 다른 사람들은 그냥 앉아서 벌고 있으니 너무합니다.
집 하나 장만하기 위해 애쓰는 그 많은 서민들은 무엇으로 보상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네요.'(2001.8.29 어떤 메일)
지난 해 7월 재건축 바람이 불어 전세가가 폭등하고 '떴다방'이 아파트 분양현장을 설치면서 날이 다르게 아파트가격을 띄우고 있을 때 썼던 칼럼의 일부와,남편 따라 동남아에 살고 있는 어떤 주부가 그 칼럼을 읽고 보내온 메일의 일부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국자들은 전세자금 지원을 확대하고 임대주택을 20만채 건설하겠다는 '병 주고 약 주는' 대증요법을 발표했다.
그러나 재정집행을 앞당기고,금리를 내리며 돈을 풀고,아파트분양에 대한 규제를 해제하는 등 소비와 건설경기를 위주로 한 내수진작정책은 계속됐다.
어떤 외국은행이 "공격적인 금리인상만이 거품의 재출현을 막을 수 있다"며 '거품'을 걱정하고 나섰을 때,고위 정책당국자는 "수출위주 모델에서 내수위주 모델로 전환이 필요하다"거나,"집값이 올라 나쁜 것만 아니라 일본 같은 장기 디플레이션에 빠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며,'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집 없는 서민에 대한 '신뢰위반'은 이어졌다.
올해 들어 강남을 중심으로 서울의 집값이 계속 폭등하자 9월 4일에 양도소득세의 면세요건을 강화하는 동시에 재산세를 90%까지 대폭 올리고,풀었던 청약요건은 되돌리고,부동산 담보대출을 축소하고,재건축 요건을 강화하고,수도권에 신도시를 개발하고,고교평준화도 후퇴하는 등의 '9·4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98년 이후 4년 사이 주택정책은 평균 45일에 한건씩 36건이 나왔다고 한다.
자고 나면 바뀌었으니 뭐가 뭔지 모를 지경이다.
무주택자를 우선하던 주택청약제도를 20세 이상 성인이 청약통장에 가입하면 청약 1순위를 주어 투기를 부추기고,은행은 기업대출보다 주택담보대출에 열을 올려 불난데 기름까지 부어왔다.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은 너무 높다.
높은 부동산 가격은 노동자들의 주거비용을 높여 임금을 상승시키고 기업의 대외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집 없는 이웃이 일해서 얻은 소득을,집 있는 사람들이 집세나 집값으로 더 가져가는 만큼 소득불균형은 심해지고 임금투쟁은 과격해 진다.
많은 선진국은 서민주택문제를 정부가 계획적이고 제도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투기꾼과 '떴다방'이 먼저 설치는 민간주도의 주택시장은 질서도 계획도 없다.
멀쩡한 아파트를 헐고 새로 지어도 비용이 빠지고 남는다면 그것은 어딘가 잘못된 봉이 김선달 식 행정일 뿐이다.
세금을 올리고 청약제도를 바꾸었지만 한탕 한 투기꾼들은 떠나버리면 그만이고,한번 오른 아파트값은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어떤 주부가 재건축 아파트를 26채나 샀다고 세무조사를 한다지만 세금을 매겨봤자 번데서 내면 되니 솜방망이일 뿐이고,비난과 함께 질투의 대상도 되는 합법적인 '재테크'의 성공이기도 하다.
서민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긴 집값 상승은 도둑보다 무서운데도,책임지거나 사과하는 사람 하나 없이 '정책'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신뢰위반'이 이어졌다.
이런 결과를 모르고 정책을 추진했어도 문제이지만,알고 그랬다면 더 큰 문제다.
투기 한번 해 보지도 못하고 오른 집값에 엄청 올라간 재산세까지 물어야 하는 실수요자들에게는 '매 맞고 매값 내는' 형국이 됐다.
'차가운 머리'에 '따뜻한 가슴'을 가진 정부당국자를 생각해 본다.
정말로 누가 매 맞고 매값을 내야 하는지….
mskang36@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