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19일 정경분리 원칙을 공식 선언한 것은 정몽구 회장의 동생인 정몽준 의원의 대선 출마가 외부의 오해를 불러일으켜 자칫 기업경영이 큰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발표는 시장이 우려하던 부분을 보다 명백히 밝힘으로써 대외 신인도 하락과 투자자들의 외면을 막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현대차는 사실 정 의원이 지난 17일 대선 출마선언 자리에서 현대차를 비롯한 '현대가(家)' 기업들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겠다는 확실한 발언을 해주길 바랬다. 그러나 정 의원이 출마선언에서 "법을 지키고 공정한 경쟁을 하겠다"는 커다란 윤곽만 밝혔을 뿐 현대가 기업들과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자 스스로의 입장을 밝히게 된 것이다. 이번 정경분리 선언에는 1992년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대선출마 이후 받아야 했던 타격도 교훈이 됐다. 현대차를 비롯한 현대 계열사들은 정 명예회장의 낙선 이후 1년 넘게 제도금융권에서 신규대출을 받지 못했을 정도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번에도 자칫 정치적인 문제에 휘둘린다면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외면당하거나 해외시장에서 신인도가 추락하는 등 과거의 전철을 되풀이 하게 될 것이란 게 현대차의 판단이었다. 이날 발표를 맡은 정순원 현대·기아자동차 기획총괄본부장(부사장)이 "최근 국내외 투자자와 해외 딜러들로부터 회사 입장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고 있어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한 것도 그동안 현대차의 고민이 얼마나 컸는지를 증명한다. 정 회장도 지난 7월 파리에서 동생 정 의원에 대해 좋게 언급한 것이 언론에 와전돼 보도되면서 구설수에 오른 뒤 2010년 세계박람회 유치활동 이외의 대외 활동은 일절 하지 않은 채 경영에만 전념해 왔다. 회사 관계자는 "정 회장이 사석에서 동생 정 의원을 만나는 것조차 의도적으로 피해왔다"고 전했다. 정 회장이 이날 일본으로 출장을 떠난 것도 세계박람회 유치라는 목적도 있지만 서울에 있을 경우 이번 추석에 정 의원을 비롯한 형제들과 만나야 하는 것이 적지 않은 부담이 된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정호 기자 j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