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수요일 아침 서울역 3번 플랫폼. 베낭을 멘 대학생들이 헐레벌떡 뛰어와 8시40분발 장항선 새마을 열차에 뛰어올랐다. 새마을호 열차 맨 앞칸 101호실은 충남 아산에 있는 순천향대가 이번 학기부터 선뵌 '열차 강의실'이다. 이날은 박우현 교수의 '여성과 철학' 교양강좌가 열렸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초가을의 정취를 즐기면서 강의를 듣는 대학생들의 얼굴에는 여느 대학 강의실에서 흔히 볼수 있는 따분함은 찾아볼 수 없다. 순천향대가 전체 학생의 약 30%를 차지하는 수도권 통학생들을 위해 개설한 '열차 강의'는 신개념 교육서비스의 '히트작'으로 꼽힌다. 고객(학생) 만족도는 매번 1백%에 달하는 출석률이 말해준다. 서울 효창동에서 통학하는 전두선씨(21.정보기술학부)는 "예전에는 1시간 동안 차 안에서 졸면서 갔는데 이젠 통학시간을 공부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어 너무 좋다"며 "열차여행의 낭만까지 곁들여져 학생들의 수업 열의가 높아 자연스럽게 토론식 수업이 이뤄진다"고 자랑했다. 철길 강의는 현재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여성과 철학' '세계여행' 두 과목이 진행되고 있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좋아 순천향대는 강좌를 더 늘릴 계획이다. 2003학년도 입시부터 대학 입학정원이 고교 수험생 수를 웃도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면서 대학들이 고객의 구미에 맞는 독특한 서비스 아이디어를 짜내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순천향대처럼 특정 지역시장(수도권 학생)을 타깃으로 신상품(열차 강의)을 내놓는가 하면 수요자의 의향을 최대한 반영한 주문형 커리큘럼을 내놓는 대학도 있다. 대학 졸업자를 채용하는 2차 고객인 기업들을 배려해 졸업생 AS(사후관리)까지 하는 등 냉엄한 시장경쟁 시대를 맞은 대학들의 고객관리 마케팅은 일반 기업들이 무색할 정도로 치열하다. 숙명여대는 학사지원팀 홈페이지에 '이런 과목 만들어 주세요' 코너를 개설, 학생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신세대 입학생들의 취향을 반영해 커리큘럼을 편성하기 때문. '교양 재즈댄스'나 '화장품과 피부' 등이 바로 고객맞춤 서비스 차원에서 개설된 강좌들이다. 아주대도 "학원에서 수십만원씩 돈 내고 강의를 듣느니 학교에서 수업을 받게 해달라"는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정보·컴퓨터공학부 과목으로 '시스코.네트워크 과정' '오라클.데이터베이스 매니지먼트 과정'을 운영 중이다. 자동차 회사가 이상이 있는 차종을 일제히 무상 점검하는 '리콜제'를 본떠 '졸업생 리콜'을 실시하는 대학도 늘고 있다. "대학이 산업 현장과 너무 동떨어진 '구식'이나 '책상물림형'을 양산한다"는 대학 교육에 대한 기업들의 불만을 의식해서다. 대전의 배재대는 신소재공학부와 토목건축공학부 졸업생을 대상으로 리콜제를 도입했다. 30여명의 교수들은 대덕밸리나 경기도 안산공단 등지를 2주일에 한 번씩 순회한다. 교수들은 배재대 졸업생을 채용한 기업들의 불만을 파악해 1년에 6차례씩 졸업생을 상대로 워크숍을 개최한다. 외국 전문가들을 초청해 첨단 기술 흐름에 대한 소개도 곁들이기 때문에 졸업생은 물론 기업체 직원들까지 참여할 정도로 평판이 좋다. 이런 AS 활동 덕분에 배재대 신소재공학부 학생의 취업률은 지난 93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 이래 언제나 1백%다. 한국산업기술대도 올 초부터 '기술인력 재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직장인의 자기관리와 커뮤니케이션' '창의적인 기획력 증진' 등 재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해 졸업생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있는 성균관대는 내년부터 어학 전산 분야로 AS 활동을 확대할 계획이다.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대학의 양적 팽창은 한계에 왔다"면서 "고객인 학생 입장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거나 복지시설 등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 하는 대학은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신기욱 교수(사회학)는 "수요자 중심 교육은 '무엇을 가르치느냐'뿐 아니라 '어떻게 가르치느냐'는 측면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며 "단순 주입식에서 현장 중심으로의 교수법 혁신도 시장경쟁 시대를 맞은 한국 대학의 필수과제"라고 충고했다. 이방실 기자 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