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터닝포인트] 정규수 <삼우이엠씨 회장>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1981년 10월12일.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이날 부도를 냈다.
회사 설립 4년만이다.
부도를 내고 펑펑 울었다.
엔지니어로 열심히 일만 했는데 부도라니.
참을 수 없는 서러움이 엄습했다.
우리 회사는 건축내장용 패널을 생산했다.
나는 수주를 위해 업체를 방문하고 현장에서 공사감독을 하는 등 바깥 일에만 매달렸다.
회사 살림은 전무가 도맡았다.
당시 2차 석유파동으로 납품업체들이 줄줄이 쓰러졌고 받아놓은 어음은 휴지조각이 됐다.
부도 한달전부터 자금흐름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은행업무를 모르는 나로선 모든 것을 회사 전무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전무는 어음발행을 늘리고 다른 회사와 어음맞교환을 통해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부도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부도가 나자 전무는 장부를 파기하고 "절대로 해결 못한다.회사를 떠나라.그렇지 않으면 채권단한테 맞아 죽는다"며 나를 협박하기도 했다.
나는 굴하지 않았다.
결자해지를 작정하고 부도 정리작업에 들어갔다.
밤낮을 안가리고 채권단을 찾아 다녔다.
빚을 꼭 갚겠다며 호소했다.
그동안 회삿돈 한푼 빼내지 않고 투명경영을 해온 나를 믿어달라고 애원했다.
며칠후 채권단으로부터 "집 한채 밖에 없는 당신을 믿겠다"는 회신을 받았을 때 너무 기뻤다.
이후 나는 전무를 퇴사시켰다.
그리고 1주일동안 회사에서 밤샘하며 서류를 파악했다.
하루는 너무 피곤해 목욕탕에 갔다.
상쾌해지면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불현듯 스치는게 아닌가.
우연찮게 얻은 "자신감"이 나의 터닝포인트라 할 수 있다.
이후 목욕이 습관이 됐다.
또 의욕을 가지면 뜻하지 않는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인생철학도 깨닫게 됐다.
나는 부도이후 집에 들어간 적이 거의 없다.
현장에서 잠을 잤다.
지성이면 감천이랬던가.
이듬해 1월들어 공사대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1982년 설날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설날 이틀 전인 1월 23일 빚을 모두 갚았다.
나는 부도에서 벗어난 이후 긴장에서 풀리면서 2월초 졸도,10일동안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이 때 며칠동안은 시력을 잃어 잠시나마 앞을 보지도 못했다.
나는 회사가 정상화되면서 신규사업에 눈을 돌렸다.
지난 1985년 뛰어든 반도체클린룸 사업은 1990년대 들어 최대의 호황을 누렸다.
명절휴일도 없이 24시간 풀가동할 정도였다.
매년 30~40%씩 성장하고 있고 올해도 매출 9백50억원에 순이익 7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나는 일본의 마쓰시타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의 "댐처럼 경영하라"를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다.
부도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할 때 신문에서 읽은 글귀다.
이후 댐처럼 항상 비축을 해 놓고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유비무환을 실천하고 있다.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이제는 회사의 은행예금이 부채보다 훨씬 더 많을 정도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