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피셔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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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으레 스타를 탄생시키게 마련이다.
며칠전 치러진 독일 총선에서도 요슈카 피셔(Joschka Fischer·54)부총리 겸 외무부장관이 단연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사민당과의 연정에 따라 녹색당 몫으로 입각한 피셔 장관은 이번 총선에서 퇴출되는 듯 했다.
녹색당의 지지율이 최악으로 떨어진데다 연정 파트너인 사민당의 인기가 바닥을 기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에 개의치 않고 녹색당의 정강정책인 환경세부과와 군 현역입대 폐지 등을 내세우며 정공법으로 유권자들을 설득했다.
결과는 창당 22년 만의 최대 득표율(8.6%)이었다.
피셔 장관이 관심을 끄는 것은 정치적인 수완이 있어서만이 아니다.
그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다.
독일 남부 랑엔부르크 산골에서 푸줏간 집 아들로 태어난 그의 학력은 고등학교 중퇴가 전부다.
학교와 집을 '족쇄'로 생각한 그는 가출해 끝없는 방랑을 하게 된다.
그의 방랑생활은 베트남전쟁 반대를 외치는 '68학생운동'의 메카였던 프랑크푸르트에 정착하면서 종지부를 찍게 된다.
당시 반전·반핵운동에 참여하고 도시빈민운동을 벌이면서 숱하게 감옥을 들락거렸다.
노숙자에서 '직업혁명가'로 변신한 셈이다.
70년대 중반 피셔는 "현실을 알지 못하는 운동은 오래 가지 못한다"며 자동차공장근로자 택시운전사로 현장에 뛰어들었다.
이후 현장운동에 한계를 느낀 피셔는 83년 녹색당에 입당하면서 연방의회에 진출하게 된다.
그는 OPEC(석유수출국기구)건물 폭탄테러에 연루된 혐의로 구류당했고 장관으로 재직 중에도 증인으로 법정에 섰다.
피셔는 '나는 달린다'라는 책을 펴내면서 또 한번의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환경장관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 96년 아내가 배불뚝이 인간통나무와 살기 싫다며 이혼을 선언하자 마라톤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1백12㎏이 나가던 체중을 불과 1년여 만에 75㎏으로 줄이는 초인적인 의지를 발휘했다.
현장근로자에서 혁명가 정치인으로 변신을 거듭해 온 피셔 장관이 당장 이라크공습으로 야기된 미국과의 외교마찰을 어떻게 조정해 갈지 자못 궁금하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