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病床에서 .. 신현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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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rina@daum.net
병원 창문으로 내다본 도시 풍경은 마치 잔잔한 물결처럼 너울거린다.
가만히 앉아 세상을 응시해보기도 얼마 만인가.
올해 들어 감기 몸살이 잦은 나는 병원을 자주 찾았다.
이럴 때마다 시간과 돈의 낭비란 생각도 들어 좀 안타까웠지만 이렇게라도 휴식을 취하는 것이 문득 즐거워졌다.
1주 염좌 진단으로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책을 읽는다.
주변이 조용하다.
고요한 시간의 리듬을 따라 책을 읽어나가면 하루가 굉장히 길게 느껴진다.
느리게 가는 시간.감미로운 바람처럼 그 무엇과도 바꾸기 싫은 매혹적인 향기다.
언젠가 중국 옛 고전을 읽다가 발견한 시 한수가 마음에 머문다.
그 출처가 기억나지는 않으나 무척 마음에 들어 이 시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중년이 되어서야 나는 내 길을 사랑하게 되었고/그리고 남산의 작은 언덕 위에 나의 보금자리를 지었네/신령이 나를 일깨우면 나는 나 자신을 벗어버리고,/나 홀로 볼 수 있는 사물을 바라보네/나는 개울을 따라 그 근원까지 좇아가고,/그리고 거기에 앉아,/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는 순간을 바라보네/그때 나뭇꾼이라도 만날라치면/담소하고 웃으면서 집에 돌아갈 생각은 잊어버리네'
이 시를 읊다 보면 조선 시대의 수묵화 강희안의 '고사관수도'가 생각난다.
고결한 선비가 잠잠히 물을 바라보는 모습.
온갖 세상사를 다 겪어낸 후 인생의 깨달음을 얻은 넉넉한 모습이 떠오르고,중년의 나이가 아니면 얻을 수 없는 관조의 깊이와 이해심이 와닿는 것이다.
중국의 시에 우리 조선의 그림을 연결시킨 것이 억지스러울 수 있으나,그 어느 때보다 시와 그림을 마시고 싶은 계절 때문이다.
나이듦이 아프지만은 않은 것은 비로소 자신이 걸어온 길을 사랑하게 되었음이 아닐까.
구름과 나무 개울물이란 책에서도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여유가 생겼음이 아닐까.
병원에 누워 치료를 받으며 책을 읽고 상상하는 시간.
어느새 나는 느리게 흐르는 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