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대동강 동쪽에 있는 만경대는 김일성 주석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평양을 찾는 외국인들은 좋든 싫든 한번은 방문해야 하는 공식코스이다. 옛날부터 명승지로 꼽히는 만경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경치가 좋은 봉우리가 해발 45m의 만경봉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정상에 올라서면 대동강과 함께 남쪽으로 펼쳐진 만경평야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만경봉은 만경대구역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북한에 물자를 실어나르고 재일교포를 북송했던 '만경봉호'는 바로 이 봉우리 이름을 딴 것이다. 우리에게 북송선으로 더 잘 알려진 이 만경봉호가 오늘 부산에 온다. 선박에는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북한선수단을 응원하기 위한 3백50여명의 응원단이 승선해 있는데,이들은 앞으로 20일 동안 선내에서 숙식을 하면서 경기장을 오갈 것이라고 한다. 보통 만경봉호로 불리는 선박은 두척이다. 이번 부산에 오는 배는 정확히 말하면 '만경봉 92호'이다. 92년 4월 김일성 주석 80회 생일을 맞아 조총련계 상공인들이 40억엔(약 4백억원)을 모아 만든 9천7백톤급으로 최대속도 23노트이다. 여객 화물 겸용인 이 배는 위성항법장치(GPS),음파 및 전파탐지기,자동조타기 등을 갖추고 있으며,파도가 높게 일면 선체 중간에서 날개가 자동으로 펼쳐져 중심을 잡도록 설계된 게 특징이다. 배 중간에는 승용차 적재용 대형공간이 있으며 영화관 목욕탕 오락실은 물론 엘리베이터도 설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의 만경봉호(3천5백톤)는 북송사업이 중단된 84년 이후부터 화물선으로 사용되고 있다. 남북간 긴장이 완화되고 북·일 관계도 호전되고는 있지만 만경봉호는 여전히 북한의 젖줄 구실을 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한달에 세차례 원산과 니가타를 왕복운항하면서 조총련계 동포와 친북 일본인,생필품과 심지어 조총련계의 송금도 이 배를 통해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북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김일성훈장까지 받은 만경봉호가 부산 앞바다에 버젓이 정박해 있는 모습을 보며,많은 사람들이 시대의 변화를 절감할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