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이라크戰 입다문 美기업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한국 기업인들과는 달리 미국 기업인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치적인 이슈에서 자유로웠다.
외교문제에서 교육 환경 복지까지 자신들의 견해를 마음놓고 개진했다.
대기업 CEO들의 주장이 실제 정책수립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요즘은 1백80도 달라졌다.
이라크 공격이 미국내 최고 이슈로 등장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 얘기하는 대기업 CEO들을 찾아 볼 수 없다.
미국 1백50대 기업의 CEO들로 구성된 로비그룹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은 미국과 이라크전쟁의 전망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내놓지 않고 있다.
1만4천개 기업을 회원으로 둔 전국제조업협회도 "회원사들로부터 충분한 의견을 수렴하지 못했다"며 논평을 거부하고 있다.
미국 기업의 대표격인 톰 도나휴 상공회의소 회장은 아예 언론과의 인터뷰를 거절하고 있을 정도다.
기업인들의 침묵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전쟁 반대를 외치면 자칫 비애국적이라는 비난을 받거나 부시행정부의 분노를 살 것을 우려하고 있다.
거꾸로 공개적으로 지지할 경우,만약 전쟁이 장기화되거나 미군 사상자가 많이 나는데 따른 비난을 받을까 걱정이다.
경제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면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이기주의자로 전락되는 게 부담이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다른데 있다. 지난 1년간 업계를 한바탕 휩쓸어 놓은 각종 스캔들이 기업인들을 '불구 상태'로 만들어 놓은 탓이다.
제프리 가튼 예일대 경영대학원장은 "지난해 말 엔론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는 CEO들이 나서지 않는 곳이 없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며 "만약 기업인들이 지금 외교정책에 대해 자기의 주장을 강력하게 말하면 일반인들의 조롱을 살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기업들에는 잘못된 행동에 대한 반성과 경영실적의 개선만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하지만 이들은 전쟁이 미국 경제를 침체로 몰고 갈 것이라는 '우려'에서,경기회복의 속도를 빠르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까지 너무나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윤리'에 발목잡힌 대기업들 덕에 부시행정부는 이례적으로 기업들의 침묵 속에 전쟁을 치를 것 같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