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KOREA] '이공계 살리기' 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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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기피는 한국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도 이공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물리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로버트 러플린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잔넨 네덜란드 라이덴대 교수,권숙일 서울대 명예교수(전 과학기술부장관)로 부터 이공계 기피의 원인과 대책을 들어봤다.
이들은 한국물리학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최근 부산에서 개최한 "국제우정의 밤"행사에 참석했었다.
좌담회 내용을 간추려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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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숙일 교수=한국에서는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과학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처우가 나빠지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가.
△J 자넨 교수=유럽은 원래 미국과 다른 전통을 갖고 있었다.
유럽의 기초과학 전통은 장인정신처럼 전승돼왔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 문화가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이제 유럽에서도 젊은이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각해졌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단순히 이공계를 선택하도록 유도하는데 머물지 않고 젊은이들이 과학기술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신경을 쏟고 있다.
△로버트 러플린 교수=미국도 마찬가지다.
나의 자식까지도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고 이공계 가기를 꺼린다.
그러나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는 게 지론이다.
따라서 시장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정부가 대우를 잘해주고 인센티브를 준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생기게 마련이다.
과학자들을 제대로 대우하고 과학자들을 필요로 하는 수요처를 찾아야 한다.
스탠퍼드대의 경우 시장에 걸맞은 기술을 우선 연구하고 있다.
다분히 시장에 맞도록 투자하고 인력을 기른다.
△권 교수=그렇다면 입자 물리학과 같은 기초 분야에 대한 투자가 이뤄질 수 있는가.
△러플린 교수=기초과학 분야의 경우 오히려 경제적인 위험성이 작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단기적으로는 수익성이 떨어지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더 큰 파급 효과를 가져오는 게 기초과학 분야다.
더욱이 기초과학분야의 발견은 경제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발견이 역사를 이끌어 온 것이 사실이다.
진정한 과학교육은 희생하는 과학자를 만드는 데 있다.
△자넨 교수=맞는 말이다.
과학의 발전이 문화와 문명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
이러한 발전과정을 과학자들은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의학이나 금융분야 등도 그 바탕에 수학을 깔지 않으면 안된다.
일반 사회분야에서도 과학의 역할이 커져가고 있으며 과학자들의 취업분야는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권 교수=기초 과학분야가 산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도 중요하다.
△러플린 교수=사람들은 기초과학을 통해 사고하는 과정을 배우고 자연세계에 적응하는 방법도 터득한다.
기초과학을 익히면 어느 분야를 택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자중 한 친구는 물리학 공부를 중단하고 산업계로 뛰어들었다.
첫 사업인 컨설팅을 그만두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다시 찾아나선 그에게 물리학과 접목한 바이오 벤처분야를 추천했다.
그는 바이오 분야에 진출해 훌륭한 사업가가 되었다.
물리학에서 배운 기초지식과 문제해결 과정이 바이오산업의 기술개발과 경영에 큰 도움을 준 것이다.
성공여부는 어디에 학문적인 가치를 두고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자넨 교수=말할 필요도 없이 기초과학은 모든 분야에서 엔진역할을 한다.
기초분야는 모든 기술 및 산업과 연계돼 있다.
따라서 국가가 이 분야를 지원해야 하며 경제논리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을 분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권 교수=자연과학 위기가 해결되려면 결국 국가가 나서야 한다.
변화하는 모든 분야에 일일이 따라갈 수는 없다.
따라서 기초 과학분야를 우선 튼튼히 하는 것이 모든 분야에 보다 빨리 적응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러플린 교수=정부 지원도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안된다.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연구와 교육이 절대 필요하다.
정부의 지원은 유행이나 특정 산업 등 필요한 부분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
과학의 가치와 정신은 유행이 아니라 독창성에 있다.
천재 과학자인 아인슈타인도 한때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기도 했다.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하지 않고 순수한 호기심과 진지한 탐구정신으로 자기 분야에 심취해야 한다.
이 정신은 세대가 달라지더라도 지켜져야 한다.
그같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바로 사회의 임무이기도 하다.
정리=오춘호 기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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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자넨 교수=
57년 네덜란드 라이덴 출생
84년 라이덴대 졸업(47세)
91년 라이덴대 물리학과 교수
초전도 분야 전문가
권숙일 교수=
65년 미국 유타대 졸업(67세)
66년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97년 과학기술부 장관
서울대 명예교수
로버트 러플린 교수=
79년 미국 MIT 박사(51세)
85년 스탠퍼드대 교수
9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양자 유체물리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