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오랫동안 인간을 희생제물로 바쳤다는 아프리카의 베닌 공화국이나 인도네시아와 아프리카 출신 18개 부족이 모여 살았다는 인도양 섬나라 마다가스카르민주공화국... 주한대사관이나 영사관이 없는 이들 나라에 가고 싶을 땐 어디서 비자를 받을까. 우리나라에 상주공관이 없는 나라들은 대신 "명예영사"를 한명씩 임명해 비자업무 대행과 자국 국민 보호 등을 맡길 수 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명예총영사.영사.부영사는 92개국을 대표해 총 1백8명. 영국이나 멕시코처럼 대사관이 있으면서도 서울외 지역 활동 등을 위해 명예영사를 두는 경우도 있긴하다. 그러나 70% 가량은 기업인이 이런 역할을 한다. 마다가스카르공화국 비자는 이웅렬 코오롱 회장 사무실에서 받고 베닌공화국에 대한 정보는 백영기 동국무역 회장 사무실에서 얻을 수 있다. 이들 대부분은 특정 나라와의 인연 때문에 명예영사를 맡았다. 윤영석 두산중공업 부회장은 대우실업에 근무하던 80년대 시장 개척을 위해 아프리카에서 고군분투하다가 정계 인사들과 친분을 맺은 것이 계기가 됐다. 김호연 빙그레 회장은 본사가 있는 경기도 남양주가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와 자매결연을 맺는 바람에 명예영사가 된 경우. 계기가 무엇이든 명예영사직은 취미생활이 아니다. 명예영사관이 빈협약에 의해 치외법권으로 보호받는 것을 제외하곤 보수나 혜택이 거의 없다. 집무실 옆을 명예영사관으로 내놓고 상주 직원을 고용해야 하며 해당국 방문시에도 항공료 숙식은 일체 자비 부담이다. 반면 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국빈 방문시 이를 주선해야 하고 해당 국가가 참가하는 각종 행사나 전시회에는 대사 영사 대신 참가해야 한다. 상호 투자 유치를 위해 다리가 돼야 하며 이민 주선도 맡는다. 요르단의 명예영사인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은 매년 요르단 독립기념일이 되면 명예 영사 이름으로 국내 영자지에 축하 광고문을 게재하고 세네갈의 명예영사인 나종태 코오롱CI 사장은 월드컵 때 직원들을 모아 세네갈의 예선 경기 응원전을 펼치기도 했다. 피지아일랜드 명예부영사인 이영기 아시아홈쇼핑 회장은 "그래도 명함에 부영사라고 찍히니까 만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신뢰감이 높아지는 것 같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이 일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명예영사들은 입을 모았다. 윤영석 두산중공업 부회장은 "국내 거주중인 54명의 우간다인들이 요청하는 민원을 1순위로 처리해주고 비자업무에는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며 "한국의 이미지를 그 나라에 좋게 심을 수 있으면 국가를 위해 큰 재산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간 역할도 상당하다. 89년부터 엘살바도르 명예영사로 일해온 구자두 LG벤처투자 회장은 과거 엘살바도르가 내전 중일 때 긴급조치로 모든 입국자에게 비자 발급시 지문날인을 요구하자 "투자하러 오는 외국 기업인들에게 지문까지 찍으라고 하느냐"고 항의서한을 보내 내무부장관으로부터 사과편지를 받고 이를 철회시키기도 했다. 이들은 해당국에 대한 애착도 많다. 김구 선생의 손녀 사위이기도 한 김호연 빙그레 회장은 "몽골지역내 우리나라 독립 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찾는데 관심이 있어 관련 서적은 거의 구입해 읽고 있다"며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몽골에 대한 애정도 각별해졌다"고 전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