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생물물리학 연구소장인 하르트무트 미헬 박사(54)는 구조 유전체학 분야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석학이다. 그는 광합성에 필요한 세포막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밝혀낸 공로로 지난 8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생명현상을 분석하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송국제바이오 학술대회와 한독상공회의소 주최 "독일 바이오산업 발전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1일 한국에 온 그를 서울 힐튼호텔에서 만나봤다. -광합성에 필요한 세포막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규명했다. 생명과학 및 의학분야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세포막 단백질은 신약개발을 위한 가장 좋은 타깃이다. 환자를 치료하는 약물의 80% 이상은 세포막 단백질을 이용한다. 당시 연구결과는 세포막 단백질의 구조를 처음으로 분석해낸 것이었다. 세포막 단백질의 구조를 밝혀내고 기능을 이해하면 거기에 작용하는 억제자(억제기능을 가진 약물)를 개발하는 데 아주 유용하다. 이 연구결과는 여러분야에 응용되고 있다. 광합성과정에 대한 분석은 태양에너지 이용에 기여하고 있고 식물의 병해충을 방제하는 제초제 개발에도 응용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인간 질병을 원천적으로 극복하는 데 열쇠가 될 수도 있다." -3명이 공동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지금도 공동으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가. "학자들간 공동연구는 다양한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과학분야에서 연구성과를 내기 위해선 화학물리 생물 수학 등 여러 학문간 교류가 필요하다.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도 다양한 학문분야간 공동연구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40세 젊은 나이에 노벨상을 받았다. 노벨상 수상이 개인의 생활과 연구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노벨상을 받고 나서는 여러가지로 힘들었다. 각종 회의와 강연회에 불려다니느라 자유로운 시간을 갖기 힘들 정도였다. 연구에 몰두할 시간도 부족했다. 남들은 또 한 번 노벨상에 도전해보라고 하지만 노벨상 받는 것이 목표가 돼서는 안된다. 내 자신의 연구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가지는 게 꿈이다." -정보기술(IT)과 바이오기술(BT)이 미래 주역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BT산업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BT의 실체에 대해 사람들은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에 없어선 안될 정도로 밀접하고 중요하다. 특히 의학,건강분야에서는 영향력이 지대하다. 가령 그동안 특정 단백질에 작용하는 의약품을 개발할 때 지금까지는 5백개의 단백질이 동원됐다. 그러나 불과 몇년 안에 그 수는 1만개로 늘어난다. 그만큼 많은 신약이 쏟아져나올 것이라는 얘기다. 단기적으로는 물론 중장기적으로 바이오산업 전망은 아주 밝다." -지식기반의 산업에서 독일은 전통적으로 강하다. BT산업도 전형적인 지식기반 산업인데,독일의 BT산업 경쟁력은. "독일은 2차대전 이전까지 자연과학의 전성기였다. 2차대전 후 그 전통이 무너졌고 이 때문에 BT산업 초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들어 과학기술에,특히 BT분야에 집중 투자했다. 우수 두뇌 확보를 위해 외국에서 전문가들을 많이 데려올 수 있도록 정부도 정책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시작은 늦었지만 유럽에서도 영국 못지않은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산·학·연간 협력체제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독일의 산·학·연 협력시스템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독일에서는 70년대까지 연구소와 기업이 손잡는 것을 '자본에 대한 노예'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산업계와 공동 협력해 진보적인 연구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연구소의 역할이다. 막스플랑크의 경우 주로 기초연구를 맡고 있으며 연구 결과가 나오면 기업으로 이를 넘겨 응용연구를 진행하게 한다. 그 과정에 드는 돈을 연구소가 지원하기도 한다." -BT기술의 산업화를 위해 막스플랑크연구소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막스플랑크는 기초연구와 특허쪽에 힘을 쏟고 있다. 이를 통해 산업화 단계의 응용연구를 강화하는 추세다. 이미 연구소 산하에 기술의 산업화를 전담하는 독립기관도 설립했다. 이 기관을 통해 연구원들이 주축이 된 30여개 회사가 파생창업(spin-off)했다. 막스플랑크연구소장도 개인 회사를 세워 산업화에 적극 나설 정도다." -막스플랑크연구소가 응용연구에 뛰어들면 결국 산업계와 경쟁을 벌이게 될텐데…. "결코 경쟁관계가 아니다. 연구소가 기업처럼 단기적으로 수입을 올리는 연구결과물을 갖고 산업화에 나서지는 않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최종 제품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1차 응용연구를 진행하므로 결국 기업은 연구소의 고객일 뿐이다." -노벨상 수상 직전에 이미 연구공로를 인정받아 여러 연구소로부터 스카우트제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굳이 막스플랑크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당시 미국에서만 20여곳으로부터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내 연구분야는 계속해서 지원을 받아야 하는 장기 연구과제였다. 지금은 미국에도 하워드휴즈연구소 등 장기과제를 맡는 연구소가 많이 생겼지만 당시엔 한 곳도 없었다. 막스플랑크는 장기과제 연구를 위해 최적의 연구소였다. 막스플랑크는 요즘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긴 시간이 필요한 장기과제라도 연구자들이 요청만 하면 과감히 지원한다." -막스플랑크연구소는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연구환경이 좋다. 막스플랑크에 들어오면 우선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된다. 대학에 비해 연구원에게 주어지는 의무도 적다. 평생 마음껏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재정적인 뒷받침도 우수하다. '일단 막스플랑크 연구원만 되면 성공 확률은 80%'라는 인식이 퍼져있을 정도다. 독일 내에서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가장 우수한 젊은 연구원들이 많이 몰려올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청소년들의 과학기술 분야 기피가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어떻게 풀어야 할 것으로 보는가. "독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연과학 전공자가 10년 전에 비해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헤센주정부에서는 이공계 대학에 대한 지원책을 내놓고 화학산업계 연수과정을 개설하는 등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어릴 때부터 과학에 관심을 갖도록 피부에 와닿는 교육을 하는 게 중요하다. 적절한 연구여건을 마련하고 이공계대학 졸업자에게 일자리도 줘야 한다. 자연과학 전공자들의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의사나 변호사가 아닌 과학자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글=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 도움말=오창규 마크로젠 연구위원(독일 괴팅겐대 분자유전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