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루사는 제주도에 초속 58m에 이르는 강풍과,강릉지역에 하루 8백70㎜의 비를 쏟아부어 모두 6조원대가 넘는 재산피해를 입혔다. 1990년대부터 집중호우가 잦아져 처음에는 이를 '기상 이변'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다반사가 되어 '기후 변화'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치수대책도 과거와는 다른 방향으로 검토돼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천정비 기본계획'에 따라 △제방 축조 △하도 정비 △다목적댐 건설을 통해 홍수를 조절해 왔다. 그러나 투자되는 치수예산은 GNP의 0.1%로서 일본의 0.45%에 비교가 안될만큼 적다. 또 계획적인 시설확충이 아니라 임기응변적으로 집행하고 있다. 때문에 2000년 현재 하천 제방은 필요한 곳의 74%만 건설됐고,매년 개수율은 1% 내외에 그치고 있다. 지난 90년대 이후 집중호우는 잦아지는데,하천 주변지역은 해가 갈수록 도시화되어 홍수방어 능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1997년부터 홍수피해가 거듭됐던 한탄강 유역 제방의 경우,늘어나는 홍수를 막기 위해 당초보다 3∼5m 높인 결과 하천 경관이 나빠졌다. 아무리 수해위험이 있다고 해도 하천제방을 무제한으로 높일 수는 없다. 또 환경 측면에서도 하천과 인간이 격리되므로 너무 높여서는 안될 일이다. 따라서 보다 과학적이고 근본적인 치수대책이 추진돼야 할 것인데,그 방법은 홍수를 일시 가둘 수 있는 '다목적 댐 건설'밖에 없다.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제방의 신축 또는 증축도 중요하고,산림정비에 의한 수해방지,배수펌프장의 확충도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홍수 때 하천에 흐르는 홍수량을 줄여야 나머지 대책들이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작용될 수 있다. 환경과 생태계 문제 때문에 하천의 홍수량을 '자연 그대로' 두고자 한다면,제방을 그만큼 높이 쌓지 않으면 안 된다. 또 하천수위가 높아지면 그만큼 제방 안쪽의 물빼기가 어려워져 낮은 지대의 침수기간이 길어지고,배수펌프시설 등의 건설 운영비는 늘어나게 된다. 국토의 홍수방어능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려면 △강 유역단위로 홍수저류를 위한 댐을 건설하거나 △하천주변 유수지 △범람방지를 위한 제방,그리고 △내수 처리를 위한 배수펌프장 같은 구조적 방어시설을 대대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물론 이는 정확한 수량분석을 통해 설정하고,방재형 도시계획·하천관리제도 등 비구조적 대책이 상호 유기적으로 작용케 해야 한다. 예컨대,어느 하천의 '1백년 치수대책'을 수립하려면,가둘 수 있는 홍수량을 계산해 댐에 담고,나머지는 제방이 담당하도록 흘려보내 하천수위에 맞는 배수펌프장을 건설하는 것이다. 지난 8월 대홍수 때 한강의 경우,소양강댐은 유입홍수 전량을 저류했고,충주댐은 유입홍수량의 약 50%를 가둠으로써 경기도 여주의 수위를 3.5m 낮춘 것으로 분석됐다. 만일 감천댐이 있었대도 김천시의 홍수피해가 지난 수해처럼 컸을까? 오봉댐이 조금 더 컸거나,또 다른 댐이 있었다면 강릉시의 수해가 그토록 심했을까? 또 위 수해지역에 댐들이 있었다면,주변 환경이 망가진 정도는 과연 수해보다 컸을까. 댐 건설은 역시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치수의 핵심 과제'다. 댐은 '치수'효과 외에 '용수'공급이라는 기능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댐으로 인한 하천수위 저하로 보다 낮게 쌓아도 되는 제방 건설비의 절약이 댐 건설비를 훨씬 상회한다는 사실이다. 댐 건설은 생태계의 변화를 초래한다. 그러나 기존의 댐 주변 환경이 대부분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변화됐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댐이 있는 하천은 늘 물이 흐르는 반면,댐이 없는 하천은 갈수기에 아예 물이 말라버려 수중생물의 서식환경이 파괴되기도 한다. '댐 건설은 곧 환경 파괴'라는 인식은 고쳐져야 한다. 댐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사회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균형감각을 갖고 판단,환경 피해를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댐을 건설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태풍 피해의 교훈이다.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