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 55번가에 있는 세인트 리지스 호텔에는 지난 1일(현지 시각) 태극기가 걸렸었다. 맨해튼 호텔들은 통상 정부 '수반'들이 묵을 때 그 나라 국기를 게양해 주는 게 관례다. 이날의 태극기는 한국경제 설명회를 위해 뉴욕을 방문한 전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에 대한 이례적인 예우인 셈이다. 이 호텔 20층에서 열린 설명회의 열기는 뜨거웠다. 2백50명 정도 참석할 것으로 예상하고 준비한 행사에 3백70명이 몰렸다. 일부는 행사장에 들어오지 못해 밖에서 전 부총리의 강연을 들어야 했다. 전 부총리 일행은 이날 오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밝은 나라"(재무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루빈 씨티그룹 회장),"세계 각국이 디플레를 걱정하는 상황에서 거의 유일하게 인플레를 우려할 정도로 호황인 국가"(스티브 로치 모건스탠리 수석이코노미스트)라는 찬사를 받을 때만해도 설명회가 이 만큼 성황일지는 예상못한 눈치였다. 전 부총리는 '미래를 향한 한국경제'란 주제로 외환위기 이후 경제개혁의 성과와 아시아 물류기지의 중심으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일문일답에서 월가 투자자들의 관심은 남북문제보다 대통령 선거에 집중됐다. 골드만삭스 부회장의 첫 질문 역시 대통령 후보들의 경제개혁의지 여부-.전 부총리의 답은 간단했다. "이미 개혁 성과에 대한 국민적인 합의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반개혁적인 공약을 내거는 후보는 당선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그리고 "몇해전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가 과감한 경제개혁 덕에 상장기업이 올해 17조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이익을 냈다"며 "이 정부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개혁을 강력히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은행이나 투신사에 대한 정부지원,한화그룹의 대한생명인수,전력산업 노사문제 등 개혁 후퇴를 우려하는 질문들을 쏟아냈다. 경제설명회를 마친 뒤 방문한 S&P에서는 전 부총리에게 각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을 요약해줄 수 없겠느냐는 주문까지 할 정도로 후보들의 개혁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누가 당선되든 경제개혁의 지속여부가 월가의 평가잣대가 될 것임을 분명히 보여준 하루였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