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경제개혁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신의주 경제특구 지정을 시작으로 한 북한의 개혁 움직임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개혁 움직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우리 기업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한국무역협회와 한국경제신문은 1일 신상복 남북교역투자협의회 회장과 서병철 통일연구원 원장, 한국경제신문 정규재 논설위원 등 각계 전문가를 초청해 '신의주 특구의 개방과 남북경협 전망'을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토론자들은 "신의주 특구 지정은 북한 개방의 신호탄"이라며 "북한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국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참석자 ] < 토론자 > 신상복 < 남북교역투자협의회 회장 > 서병철 < 통일연구원 원장 > 정규재 <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 사회 > 한영수 < 한국무역협회 전무 > ----------------------------------------------------------------- △ 사회 (한영수 전무) =신의주 특구와 관련된 기본적인 법제는 알려져 있으나 일반인들은 아직도 특구의 개발방향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갖고 있다. 신의주 특구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될 것 같은가. △ 신상복 회장 =2∼3년전 단둥지역에는 신의주가 곧 열려 선전처럼 개발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당시 단둥지역에 반짝 부동산 투자붐이 일었지만 그 이후 이렇다할 조치가 없어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났다. 그 때의 소문이 이번에 현실화됐다. 신의주 특구 지정은 아주 파격적인 것이다. 신의주 특구의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한국 기업에 달려 있다. 국내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 없이는 북한이 기대하는 결과가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 정규재 위원 =90년대 초반 구 소련이 개방할 때 우선 임금 물가 현실화조치를 취했다. 처음 북한이 임금을 현실화시켰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구 소련의 '전면 개혁.개방' 모델을 따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신의주 특구 지정을 보고 북한이 중국식 개혁을 선택했음을 알게 됐다. 즉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개혁의 수순을 밟아나가는 것이다. 발표 자체는 매우 돌발적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상당히 점진적이었다. △ 사회 =러시아식이 아니라 중국식 개혁을 택한 것은 경제 개방의 성과가 중국이 나았다는 것인가, 아니면 정치이념상 중국 형태가 맞았다는 것인가. △ 정 위원 =중국은 농업국가였기 때문에 완전히 새롭게 공업을 시작했지만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공업 기반이 갖춰져 있어 이를 활용하는 형식으로 개혁을 진행시켰다. 북한은 70년대 기본적인 공업 시설을 갖췄기 때문에 산업 구조상 러시아식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적인 부담 때문에 중국을 선택한 것으로 본다. 사회구조를 완전히 바꾼 러시아식을 따라가면 체제 붕괴의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 서병철 원장 =북한은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피폐한 경제를 복원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러시아는 정치적으로도 민주화·탈공산화했지만 중국은 공산주의를 유지하면서 자본주의를 받아들였다. 경제 개방의 성과도 중국이 러시아보다 훨씬 좋았다. 이 두가지 이유 때문에 북한이 중국식을 택한 것 같다. △ 사회 =신의주 특구의 운영 계획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의주 특구는 북한 내부와 엄격히 분리,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신의주 특구의 개방으로 얻을 수 있는 북한의 실익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 서 원장 =IT(정보통신) 기업을 유치해 외화 획득과 선진 과학기술 도입을 동시에 겨냥한다는 것이 북한의 목표다. 북한은 IT 산업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뒤처진 경제를 단시간 내에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IT가 제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IT 기업의 진출이 필수적이라 본다. △ 사회 =신의주 특구는 중국 국경도시인 단둥시와 압록강을 사이로 마주보고 있고 북.중간 교역의 상당 부분은 이곳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신의주 특구의 경제성과 입지여건을 어떻게 보는가. △ 신 회장 =중국 기업은 한국과 교류하는 업체들이 주로 진출할 것이다. 일본의 경우 조총련계 기업이 일부 진출할 것으로 보이나 순수 일본 기업의 진출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만 기업도 섬유 등 일부 업종만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방 기업들은 리스크 때문에 거의 들어가지 않을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업체들이 얼마나 활발히 투자할 것인가다. 국내 업체들중 내수용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의 진출이 많을 것으로 본다. 수출용 회사는 거의 메리트가 없지만 국내 내수용은 면세로 인해 수익이 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관세를 피해 중국의 생산공장을 북한으로 옮기겠다는 사람도 더러 있다. △ 사회 =신의주 특구를 보는 시각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성공 가능성을 어떻게 보는가. 또 북한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 선행돼야할 과제는 무엇인가. △ 정 위원 =북한이 신의주 개발에 성공하려면 미국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이 필수적이다. 항만 전면 개.보수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해 국제 자본을 끌어들여야 되는데 이 비용을 댈 수 있는 국제기구는 미국의 입김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미대화의 성공 여부가 굉장히 중요하다. △ 사회 =신의주 특구가 우리 기업들에 미칠 영향은 어떠한가. △ 신 회장 =국내에서 제조업을 하고 있는 업체들의 사정은 굉장히 어렵다. 이런 업체들에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너도나도 북한으로 들어가겠다고 해서는 안된다. 최근 중국사업이 뜬다고 하니까 모두들 중국으로 진출했다. 그 결과 국내 업체들끼리 과당경쟁을 벌여 큰 손실을 입기도 했다. 신의주나 개성에서도 이같은 현상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 사회 =북한 내부에서도 물가 현실화와 임금 대폭 인상, 환율 실세화 등 경제관련 개선조치를 시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과 교역하고 있는 업체로서 현장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는가. △ 신 회장 =97년부터 공장의 20∼30% 정도는 배급제를 중단하고 인센티브제를 도입해 왔던 것 같다. 경제개혁에 대한 연구가 이미 그때부터 있어 왔음을 뜻한다. 최근 들어 북측 관계자들이 많이 유연해진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시장경제식 사고 방식이 일부 통하는 것 같다. 북한 현지에 있는 우리 회사 공장은 최근 몇 달 동안의 생산성이 금년 상반기보다 20%가량 높아졌다.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돌려주니 노동생산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작은 부분에서부터 변화를 감지하고 있다. △ 사회 =남북 경협추진위와 후속 실무회담을 통해 남북은 상호 경협에 필요한 여러가지 사항에 대해 합의했다. 향후 남북경협 전망을 어떻게 보는가. △ 서 원장 =북한이 개혁.개방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남한의 시장경제와 점차 접근해가게 된다는 뜻이다. 북한의 변화 조치가 안정적으로 확대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도 여러 조치가 필요하며 남한이 보증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정 위원 =북한 문제는 항상 우리 사회 내부의 뜨거운 감자였다. 우선 남한 내부 사회 세력간에 합의가 필요하다. 기업들간의 교통정리는 물론이거니와 정치세력간의 교통정리도 필요하다. 북한 문제가 정쟁이어서는 안된다. △ 신 회장 =북한은 평범한 상대가 아니다. 그만큼 대북 교역 과정에선 시행착오가 많다. 금전적 시간적 낭비는 감수해야 한다. 북한과의 교류에선 경제 외적인 부분의 영향도 크다.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해야 한다. 급할수록 천천히 가라는 말도 있다. 사소한 원칙부터 지켜가면서 경협을 추진하는 것이 결국은 가장 빠른 길이 될 것이다. △ 사회 =북한 개혁 문제와 관련해서 정부나 관계기관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 서 원장 =장기적으로 통일 목표 달성과 통일 이후의 인프라를 미리 구축한다는 차원에서 북한에 거국적인 관심을 쏟아야 한다. 북한의 성공적인 개혁.개방은 결국 한반도 평화 정착에 도움이 될 것이다. △ 정 위원 =중국의 개혁.개방이 성공하는 데에는 화교 자본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남한의 자본이 필수적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에 대해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도와줄 것은 도와주면서 남북경협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정리=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