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지난 5년간 정부 금융 등 각 부문의 근본적인 구조조정보다는 팽창적 거시정책을 통해 위기를 극복,주변 경제여건이 악화될 경우 또 다시 심각한 위기에 빠질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 등 20명의 국내 경제·사회학자들은 4일과 5일 서울대 국제금융센터(소장 정덕구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 주최 국제학술대회 '위기를 넘어서(beyond the crisis)'에서 발표할 논문을 통해 지난 5년간의 외환위기 극복과정을 이같이 정리했다. 이들은 "지난 5년 동안 경제회복과 국가신용도 상승 등의 성과도 적지 않게 거뒀지만,국가신인도 상승이 곧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의 감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외환위기 완전회복론'에 일침을 가했다. 발표예정인 13편의 논문내용을 주제별로 요약·정리한다. ◆경제위기의 원인 경제학자들은 기업들의 팽창경영과 불안전한 경제기반이 위기의 원인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원인의 우선 순위에서는 입장이 달랐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97년 위기는 거시 경제적 불균형보다 수익성이 낮은 재벌들이 부채에 의존한 양적 팽창을 계속하는 등 미시 구조적 결함이 중첩된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최공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취약한 펀더멘털(경제기초여건)과 투자자의 공황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특히 정부의 고성장 전략과 환율정책은 금융부문 투자자 심리의 변화에 매우 취약한 상태였으며 이것이 금융시장 개방과 함게 증폭됐다"고 덧붙였다. ◆임기응변식 대응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의 정부 대응방안에 대해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윤영관 서울대 교수는 "미국은 한국의 위기극복 과정에서 월가의 이익을 대변했다"며 "특히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은 금융 및 통상 개방을 통해 한국 경제가 일본 대신 미국의 금융모델에 편입되도록 외환위기를 활용했다"고 비난했다.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는 "외환위기 초기단계에 남미식 긴축재정 정책에 지나치게 집착했다가 나중에는 재정수요 예측에도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정 총장은 "정부는 구조적 결함을 개혁하기보다 팽창적 거시정책을 통해 위기를 관리해왔기 때문에 주변 경제 여건이 어려워지면 언제든 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향후 정책과제 경제학자들은 경제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외환 금융 노동 복지 등 각 부문에서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인준 서울대 교수 등은 "국가신인도 상승으로 위기발생 가능성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라며 "정부는 자본자유화 확대를 통해 국제금융시장의 위험에 대한 노출 정도를 높이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98∼99년 중 빈곤선 이하 계층이 두 배로 늘어나는 등 우리 사회의 빈곤이 심화되고 소득재분배가 악화되고 있다"며 "위기가 다시 오기 전에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영기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협력적 노사관계를 위해서는 추가 시장개방으로 경쟁을 촉진시켜 노사가 공동운명체임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재열 서울대 교수는 "정부만이 위기 후 역할 재정립과 공적인 규칙의 투명성 확보에 실패했다"며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공적 신뢰를 쌓는 게 핵심 과제"라고 지적했다. 박수진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