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IT업계 사람들을 만나면 화제는 대개 '경기가 언제쯤 풀릴 것이냐'는 점으로 모아진다. 기자가 궁금해 물어보면 상대방이 오히려 되묻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IT업계는 지난해 심한 불황을 겪었기 때문에 올해 좀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으나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IT벤처들이 연말께 돈이 바닥나 무더기로 부도날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또 부도만 안 났지 사실상 사업을 접은 기업이 수두룩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런 흉흉한 분위기 속에 지난주 파이낸셜타임스(9월30일자)는 "실리콘밸리의 올해 R&D(연구개발)투자가 지난 60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고 전하면서 "최악의 IT불황이 기술혁신의 메카 실리콘밸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장문의 분석기사를 내보냈다. 래리 앨리슨 오라클 회장은 이 기사에서 "실리콘밸리의 현 상황을 경기사이클상 단순한 경기하강기로 믿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라는 극단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IT불황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란 얘기였다. 이 기사는 내년 중 경기회복을 기대했던 세계 IT업계 관계자들의 희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또 뉴욕증시의 폭락사태와 맞물려 세계경제에 대한 디플레이션 우려를 확산시키는 데 일조를 했다. IT산업의 불황이 이처럼 심화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는 공급능력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수요의 부재다.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PC를 보면 이해가 쉽다. 일반가정에선 불과 3∼4년 전만 해도 1년에 한번씩 PC를 교체했다. 새로운 게임이 나왔는데 기존 PC로는 안된다는 아이들의 성화에 부득이 업그레이드된 PC를 사야 했다. 하지만 3년전쯤 펜티엄급 PC를 산 이후에는 불평이 전혀 없다. 그만큼 기술발전으로 PC 성능이 좋아져 교체수요마저 정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기업환경의 불투명성으로 인한 기업들의 IT투자 감소다. IT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생산성 향상이나 기술개발 등을 위해 정보화투자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기업들은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워 정상적인 설비투자마저 망설일 정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후순위 성격을 갖는 IT투자는 자연히 뒤로 밀려나고 있다. 그러면 IT불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정책적으로 수요를 일으키는 방법이 하나 있을 수 있다. 이상철 정보통신부장관이 주장하는 IT투자펀드의 조성도 이와 비슷한 성격이다. 이 장관의 구상은 이동통신회사들이 막대한 이익을 냈으나 요금을 인하하는 것보다는 이익 중 일부로 투자펀드를 조성,IT산업발전에 투자하도록 독려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휴대폰요금을 인하하라는 시민단체 및 소비자들의 반발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또 민간기업의 이익을 정부가 맘대로 공적인 일에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시장경제에 맞느냐는 논리적 약점이 있다. 한 마디로 사회적 동의를 받아내는 데 어려움이 있다. 기자는 차선책으로 IT기업들의 M&A(인수합병)를 세제혜택 금융지원 등을 통해 대폭 지원해 주는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 현재의 상황을 IT거품이 빠지는 단계라고 본다면 M&A를 적극 지원해 거품 빠지는 기간을 단축시키고 '살 수 있는 기업'을 살리자는 것이다. 이는 불황의 심화에 따른 사회적 손실을 줄이는 길이기도 하다. 부도 날 기업을 다른 기업에 합병시킴으로써 그 기업에 투자한 투자자들을 보호할 수 있고,흡수합병한 기업의 경쟁력은 더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비슷비슷한 규모와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제살 깎아먹기'경쟁을 벌이는 풍토에선 공멸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cws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