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HAM) 취미 가져보는 거 어떠세요.장비 구입은 제가 도와드릴께요" 백우현 LG전자 기술총괄 사장(CTO)은 무선통신 마니아다. 매일 한번씩 송신기를 켜고 전리층을 향해 31년째 무선단파를 날리고 있다. 지난 98년 LG전자에 스카웃될 때까지 25년간 살았던 미국에서는 집에 안테나를 "열댓개"나 설치했었다. "아내가 "당신 죽으면 무덤에 안테나하고 와이어는 꼭 설치해 주겠다"라고 했을 정도죠" "HAM"은 1.8MHz에서 28MHz 사이의 단파를 이용한 무선 교신을 취미로 삼는 사람들. 우리말로는 "아마추어무선사"라고 한다. 어원에 대해선 정설이 없지만 아마추어무선국의 활동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막아내는데 기여한 1908년 미국 하버드대학 단체무선국 멤버 3명의 머리글자가 H.A.M이었던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테나를 설치하고 채널을 돌려가며 무슨 말이든 하다 보면 전리층에 반사된 전파가 공중을 떠돌다 누군가의 수신기에 잡혀 교신이 시작된다. "HAM의 장점은 예측불허성이예요.낚시대를 드리우고 기다리는 것과 비슷합니다.어느 나라의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지요.한번은 요트로 세계일주를 하는 아저씨와 친구가 됐습니다.몇일 몇시 몇 주파수에서 만나자 하는 식으로 약속하는 거죠" 가끔은 직접 만나기도 한다. "우리끼리는 아이볼 미팅(Eyeball meeting)이라고 합니다.목소리로 상상했던 얼굴과 실제 모습을 비교해보는 것도 무척 재미있는 일입니다" 지금은 전세계에 3백만,국내에만 6만명의 HAM이 활동하고 있지만 백 사장이 처음 "콜 사인"을 받은 것은 라디오가 "가보"로 대접받던 1971년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상가에서 부품을 사다가 라디오와 전축을 조립하기 시작했는데 어느날 단파 라디오로 외국 방송이 잡혔어요.완전히 빠졌죠" 백 사장은 취미와 일이 별개라고 말하지만 HAM은 CTO로서의 그의 프로필을 완성시킨 과정이었다.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제 진로를 결정했다고 생각해요.LG전자가 만드는 제품 하나 하나에 정열적으로 빠지는 것도 제 취미나 성향 때문이겠고..." 고교시절 라디오와 전축을 조립해보던 그가 서울대 전기공학과와 대학원,MIT를 거쳐 CTO로 일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지금 HAM을 위협하는 것은 인터넷이예요.요즘 애들은 국적이 다른 HAM들이 서로 금방 친해지듯 인터넷 대화방에서 새 친구를 사귀죠.하지만 비상사태가 닥쳤을 때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중계기 없이 교신할 수 있는 HAM 뿐입니다.그 고유한 기쁨은 인터넷에 비할 바가 아니죠"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