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네요. 이제는 시세판 쳐다볼 힘도 없습니다." 7일 오전 여의도 대신증권 본사 1층 객장.지난 주말 반등세에 힘입어 여의도를 찾았던 투자자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개장 후 두세 시간이 지나자 시세판 앞에 앉은 투자자들이 고작 10여명으로 줄면서 객장은 한기를 느낄 만큼 썰렁해졌다. 미국 증시가 곤두박질치면서 한국 시장을 강타해 지지선으로 여겨지던 종합주가지수 630선이 장중에 붕괴되자 투자자들은 바깥으로 나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지수는 몇 차례 하락폭을 줄이기도 했으나 반등에 실패,결국 연중 최저치까지 미끄러졌다. 서울시 목동에 거주하는 이상호씨(64)는 "10개 종목에 투자해 놓았는데 반토막난 지 오래"라며 "지난주 후반 증시가 반짝해서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객장에 왔지만 어디에서도 희망을 찾기 힘든 상황"이라며 한숨지었다. 주부 김선명씨(43)는 "여윳돈을 은행에 넣자니 이자가 너무 낮아 주식을 샀다"며 "주가가 너무 떨어져 집에서는 불안해 견디기 힘들어 객장을 찾았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다"고 울상을 지었다. ◆ '벙어리 냉가슴' 앓는 증권업계 =증시 침체는 투자자뿐 아니라 증권업계에도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증권사들은 주가 하락에 따른 거래 급감으로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거래수수료가 크게 줄어들자 내년 사업계획을 대폭 변경하는 등 방안을 강구 중이다. 증권사 영업 담당자들과 애널리스트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오르는 것 같아 매수를 추천하면 번번이 내림세를 보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 H증권 인천지점 오모 과장(37)은 "주가가 급락할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문의 전화를 고객들로부터 받는다"며 "그러나 매도 후 현금화할지 아니면 계속 베팅해야 될지 스스로도 망설여지는 상황에서 투자 가이드를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그는 "퇴근해도 마음이 편치 않아 TV나 인터넷으로 미국 증시 상황을 지켜보다가 밤을 꼬박 새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코스닥에 등록된 소프트웨어 기업을 담당하는 K증권 K연구원(35)은 "지난주 일부 인터넷 관련주에 대해 펀더멘털(기업 내재가치) 측면에서 좋은 것으로 판단하고 주식 매수를 추천했는데 그때만 반짝했다가 다시 곤두박질쳤다"며 "이제 와서 '매도'를 외치기에는 타이밍이 늦은 것 같아 아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 먹구름 낀 여의도 경기 =주식시장 침체에 채권시장 약세까지 겹쳐 '여의도 경기'는 잔뜩 찌푸려 있다. 채권중개인인 동부증권 한상희 대리(30)는 "주식시장이 침체되면 채권시장은 강세를 보이는 게 보통"이라며 "그렇지만 국내 경기 흐름에 비춰 금리는 오를 일 밖에 안남았다는 인식이 번져 좀처럼 투자자로부터 채권 주문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평소 증권사 직원들로 넘쳐나던 여의도 식당가도 듬성듬성 빈 자리가 눈에 띄었다. 김밥을 사들고 서둘러 회사로 다시 들어가는 회사원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보였다. 벤치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던 광경은 찾아보기 힘든 상태다. 한식집을 운영하는 이연자 사장(58)은 "평소 증권사 직원들이 많이 찾는데 요즘에는 20% 가량 손님이 줄어든 것 같다"며 "예전과 달리 손님들도 묵묵히 식사만 하고 곧바로 자리를 뜨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임상택.이태명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