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22:17
수정2006.04.02 22:20
대북 4억달러 지원설을 놓고 여야간에 공방이 치열하다.
야당은 '불법적 국기문란행위'로 규정하고 국정조사는 물론 특별검사제 도입까지 요구하고 있다.
여당은 대북 지원설을 부인하며 현대상선이 산업은행 대출금 4천억원을 채무변제나 계열사 지원에 사용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이 어떻게 판명나느냐에 따라 여야의 정치적 득실은 달라진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입는 득실은 4천억원 대출금이 대출은행과,차용기업의 회계장부에 어떻게 기록돼 있는 가에 따라 달라진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금융감독원에 보고하는 2000년도 5월 반기 보고서에서 3천억원을 누락시켰다.
산업은행도 은행연합회의 기업여신정보(CRT)에 2000년 6월 대출당시에는 이 금액을 누락시켰다가 몇달 뒤에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회계분식의 의혹을 살 만하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고,이로 인해 국제통화기금 프로그램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로서는 분식회계와 불투명한 경영의 대가가 어떻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국민의 정부 들어서서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회계기준을 강화하고,선진 자본 인프라 구축에 많은 노력을 경주했다.
그 결과 기업의 회계투명성은 크게 향상됐다.
엔론에서 시작돼 월드컴으로 이어진 미국기업의 회계부정행위로 월가가 휘청거릴 때도 우리는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나.
현대상선은 2000년 8월 공정거래위원회가 감사에 앞서 요구한 자료 제출에서도 산업은행 대출금을 누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무능을 탓하는 소리도 높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몇달 동안 6대 그룹 8백9개 계열사간의 내부거래에 대해 각종 서면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천건 가량의 내부거래공시 현황도 점검중이라고 한다.
재계에서는 '구체적인 혐의가 포착되지도 않았는데 전체 계열사를 대상으로 한 투망식 조사는 실익도 없이 기업의 불편만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2000년 6월 당시 조금만 주의 깊게 살폈으면 현대상선의 이상 징후를 포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할 일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엉뚱한 짓만 한다'는 것이다.
'계좌추적을 해서라도 현대상선의 대출금 행방을 밝히라'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노조까지도 이에 가세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계좌추적은 금융실명제법 위반'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가장 나쁜 대처방안은 의혹을 방치하는 것이다.
국내외 투자가들은 우리 기업의 회계투명성에 대해 다시 의심을 갖고 이번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따라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그동안 공들여 쌓아왔던 우리 경제의 대외신인도에 타격을 입힌다.
최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등 전세계적으로 주가가 폭락하고 있다.
이러다 세계 전체가 공황의 늪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부동산담보 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급증하고 있어 가계 부실화가 우려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외신인도 저하는 외국자본의 이탈을 가속화하고 금리와 환율을 폭등시킨다.
이는 부동산가격의 하락과 가계 파산을 유발한다.
이에 따라 우리 금융회사의 부실화가 심화되고,기업의 채산성은 악화돼 대량실업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러므로 이번 사건을 의혹이 남지 않도록 투명하게 조사해서 대내외에 밝혀 우리의 대외신인도 저하를 막는 방법만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금융감독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위상을 강화시켜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
금융감독위원장과 공정거래위원장의 임명은 국회 동의를 받게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통합해 민간기구로 새롭게 출범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기획조사'를 지양하고 상시 모니터링 기능을 강화해 위반 혐의가 포착된 기업에 한해서만 조사를 시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정권에서도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경제를 희생시키는 일이 또 다시 벌어질지도 모른다.
hongecon@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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