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옛 가옥 형태는 지역에 따라 상당히 달랐다. 추운 북쪽지방엔 열효율을 높이기 위해 대청마루 없이 방들을 모은 밭 전(田)자형이 많았던 반면 중부엔 ㄷ자형,따뜻한 남쪽엔 한 일(一)자 모양이 주를 이뤘다. 건물이란 이처럼 자연에 적응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은 물론 그것이 지어진 시대의 사회ㆍ문화상을 드러낸다. 영국의 민간단체들이 일찌감치 사적은 물론 건축물 보존에 나서고 프랑스와 일본이 '전통가로(街路)보존법'을 제정한 것도 건물이 지니는 그같은 역사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경우 구한말 개화기부터 광복 전후까지의 건축물은 전통과 신문물이 뒤섞인 격동의 한국 근대사를 그대로 상징한다. 그러나 이들 건물은 각종 개발에 떼밀려 대부분 멸실됐거나 계속 사라지고 있다. 이런 아까운 근대 건축물을 보존할 필요성에서 생겨난 게 지은 지 50년이상 된 건물 중 조형적 혹은 역사적으로 가치있는 것을 문화재청에서 지정하는 등록문화재 제도다. 지난해 가을 도입된 뒤 올 2월 서울 남대문로 한국전력사옥 등 10건, 5월에 서울 중구 옛 국회의사당과 광주 서석초등학교 등 29건, 9월에 부산 임시수도 청사를 비롯한 5건 등 44건이 선정됐다. 이 가운데 조흥은행 대전지점과 옛 호남은행 목포지점, 전남 여수 신풍리 애양교회,전남 나주 '양천리천주교회'등 은행과 교회가 많은 것도 우리 근대사의 흐름을 짚어보게 해준다. 하지만 등록문화재가 되면 고치거나 팔기 어려워 지정을 기피하거나 지정 예고 뒤 몰래 헐어버리기까지 한다고 한다. 조흥은행만 해도 이미 대전과 목포지점이 선정된 데다 등록후보 건물이 34개나 돼 내심 고민이라는 것이다. 선정돼도 외관을 크게 손상시키지 않는 한에서 내부를 고칠 수 있고 종합토지세와 재산세를 50% 감면해준다지만 증ㆍ개축 세부지침이 없고 지정고시 뒤 없애도 과태료 30만원만 물면 되는 등 허점이 남아있다고 한다. 개발과 보존의 문제는 진정 풀기 어려운 숙제지만 주요 건물만이라도 지켜내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듯싶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