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화 대우증권 원주지점장은 여간해선 코스닥기업을 추천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IT(정보기술)경기의 침체로 IT회사가 대부분인 코스닥시장이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 지점장은 "8백개를 웃도는 코스닥기업의 이름을 외우는 것도 버겁다"며 "특히 사업내용과 이익구조를 꿰뚫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코스닥시장을 위기로 몰고 간 주범중 하나로 "낮은 진입문턱과 느슨한 퇴출기준"이 꼽힌다. 이에따라 등록기업수는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상장기업을 추월했다. 문제는 등록기업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시장 침체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등록기업 수가 2백개를 조금 웃돌던 지난 2000년 3월 말 코스닥시장의 시가총액은 81조원이었다. 하지만 등록기업 수가 8백30개를 웃도는 지금은 시가총액이 35조원에 불과하다. 숫자가 4배로 늘어나는 사이 시가총액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는 것은 평균적으로 주가가 8분의 1 토막이 났다는 얘기다. 코스닥시장을 운영하고 있는 책임자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신호주 코스닥증권시장 사장은 "코스닥시장이 공급과잉 상태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정의동 코스닥위원장은 퇴출제도를 강화하고 우열반 운영을 검토하는 등 투자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숫자를 줄이는'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시장원리에 기초한 개선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퇴출제도를 강화한다고 해서 숫자가 기대만큼 빠르게 줄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등록기업의 숫자를 줄이고 대신 1개 회사의 규모를 키우는 방법은 역시 기업인수·합병(M&A) 활성화밖에 없다. 등록기업끼리 또는 등록기업과 비등록기업간 자율적으로 합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정영채 대우증권 주식인수부장은 M&A 활성화를 위해선 "주식맞교환 방식을 통한 M&A의 경우 양도소득세를 면제해 주거나 감면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현행 세법에선 주식맞교환을 하더라도 현금거래와 같다고 보고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을 최고 30%까지 매긴다. 예컨대 10억원을 투자해 A사를 1백억원어치 회사로 키운 창업주 갑(甲)씨가 B사에 팔기로 했다고 치자.갑씨가 자신의 보유주식을 1백억원의 현금을 받고 팔 경우 갑씨는 당연히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이때 과세의 기준은 90억원(1백억원-10억원)이 된다. 갑씨가 현금을 받지 않고 주식맞교환을 통해 회사를 매각하더라도 현행 세법 아래선 같은 세금을 내야 한다. 정 부장은 "주식교환의 경우 매매차익이 실제 발생하지 않는 만큼 현금을 받고 주식을 팔 때까지 양도소득세 부과를 미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선 주식교환을 통한 M&A의 경우 양도소득세를 매기지 않는다. 이런 정책적 배려로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노텔 등 세계적인 회사가 나스닥시장에서 탄생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자발적인 합병을 통해 대형 우량 회사로 발돋움하려는 시도가 나오고 있다. 더존디지털웨어와 뉴소프트기술과의 합병논의가 그것이다. 전사적자원관리(ERP)가 주사업인 두 회사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부문에서 각각 강점을 갖고 있으며 합병할 경우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