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달말까지 기업연금제도 시행방안을 만든 뒤 노사정위에 상정하고 내년 2월 국회에 관련법 개정안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현행 법정퇴직금제도가 과다한 기업부담과 기업도산시 퇴직금지급 어려움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게 사실이고 보면,연금이 사외에서 별도 펀드로 투명하게 관리되고 근로자가 펀드운용 방식을 선택하는 장점을 가진 기업연금제를 대안으로 검토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잘만 하면 매년 1조원 규모의 신규자금이 증시에 유입되는 부수효과도 기대된다면 더욱 그렇다. 우리는 기업연금제 도입 자체를 반대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중요한 제도를 바꾸는 것인 만큼 치밀한 사전준비도 없이 무리하게 밀어붙일 일은 아니라고 본다. 당장 직접 이해당사자인 기업과 노조가 모두 반대하고 있어 내년부터 시행하는 건 무리다. 기업연금제의 경우 기업의 갹출금 부담이 지금보다 상당히 줄어든다는 점을 정부는 강조하고 있지만,퇴직급여충당금 적립이 부실하거나 퇴직보험에 가입했다 해도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쓴 기업들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연금을 외부에 적립할 여력 있는 기업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근로자 입장에서 볼 때도 연금 운용대상이 마땅치 않은데다 주가폭락으로 인해 그나마 유일한 노후보장수단이 순식간에 유명무실화 될 위험이 없지 않기 때문에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현행 법정퇴직금제를 기업연금제로 원활하게 전환시키기 위해 검토해야 할 세부사안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기업연금제 적용범위는 어디까지로 할지, 종업원들이 퇴직금 중간정산 요구를 할 경우 수용토록 할 것인지, 연금기금의 건전성 유지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는 어떻게 마련할지, 근로자가 직장을 옮기거나 조기퇴직할 경우 기존 연금과의 연계방안은 무엇인지 등 하나같이 전문가들의 신중한 검토와 광범위한 여론수렴이 필요한 실정이다. 확정갹출형과 확정급부형 연금을 모두 허용할 경우 갹출금과 연금급부 등에서 형평성 시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데도 신경을 써야함은 물론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당국이 증시부양 효과에만 집착한 나머지 기업연금제 도입을 지나치게 서두르는 인상을 주고 있는 건 앞뒤가 뒤바뀐 유감스런 일이다.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기업연금제를 비롯한 노후복지제도는 그 자체가 중차대한 사안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할때 정책당국은 시행가능성과 파급효과를 좀더 면밀히 점검해야 마땅하다.